[만남] 한화진 환경부 장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간담회
신재생에너지 20%까지 확대
순환 경제 시스템 구축에 역점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과학기술과 혁신에 기반한 환경정책, 현장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환경정책, 국제 환경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환경정책을 하겠습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7월 29일 환경부 서울사무소 역할을 하는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오명숙 회장을 비롯한 여성 과학계 인사들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 발언에 윤석열 정부의 환경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사점이 강력하게 드러나 있다,

환경정책은 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를 막고 수질 대기 생태계 등 환경을 보호하는 규제행정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환경만큼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분야도 드물다. 에너지만 해도 그렇다. 많은 나라들이 에너지 때문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에너지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한 장관 자신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환경정책은 의사결정 과정에 최신 연구성과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인공지능(AI) 홍수예보(2025년), 댐-하천 디지털 복제물(트윈) 구현(2026년) 등의 첨단기술을 활용해 홍수 대응체계를 완비하는 것이다.

다른 정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환경정책은 산업계와의 갈등, 환경단체의 압박, 국제정세의 변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정책 참여자들의 이해와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현장과의 소통과 협력이라는 두 번째 정책 방향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셈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화학자 출신 환경정책 수장

한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취약점으로 여겨지는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자)’ 인사의 상큼한 예외다. 그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다. 첫 내각 인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발탁되었는데 여성이라는 점 말고도 전문성에서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는 고려대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에서 물리화학을 했고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대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이유로 지난 5월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진행된 이후 다음날인 5월 3일 윤석열 정부 최초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됐다.

한 장관은 서둘러 업무 파악을 끝내고 7월 18일 새 정부의 핵심 추진 과제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어느 때보다 경제와 민생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 환경과 경제를 함께 살릴 수 있는 과제,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위한 과제들을 중점적으로 담았다고 밝혔다. 3대 핵심과제, 9개 세부과제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과학적이고 실현가능한 탄소중립 이행’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감축한다는 국가목표(NDC)를 지키되, 원전의 역할을 늘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확보된 배출 여유분을 산업·민생(건물·폐기물) 부문에 안배해 부문별 감축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7%대까지 올라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올리는 것도 계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한 장관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기반을 만든 장관”으로 기억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실패 하더라도 시도하라” 조언

한 장관의 또 다른 역점사업은 순환 경제 시스템 구축이다. 유엔(UN)은 2024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규제 협약을 만들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및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전 지구적 위험 요소로 떠오르면서 제정되는 이번 협약은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 장관은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 수거 선별 재활용 등 전 과정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폐기되는 전기 전자제품이나 배터리를 수거해 리튬 코발트 등 희소금속을 추출하고 재활용하는 일을 강화할 생각이다. 전기차 확대에 따라 폐배터리 역시 급증할 터라 폐배터리를 희소금속 추출을 위한 ‘도시의 광산’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한 장관은 가냘프고 온화한 이미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계발하고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준비된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환경연구원 시절부터 굵직한 정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원자력과 국책사업 등 다양한 환경 현안에 자문해왔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0년 환경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비서관의 주요 임무는 녹색성장의 초석을 닦는 일이었다. 이후에도 녹색성장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참여하며 꾸준히 정책에 관여해왔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 사진=환경부 제공

비서관 재직 이후 12년 만에 환경정책의 수장으로 돌아온 소감은 어떨까. 그는 “올해 물관리가 환경부로 일원화 한데서 보듯 환경부의 인력 예산 조직이 엄청나게 커졌고 환경부 직원들의 실력 또한 놀랍게 성장했다”며 그런 만큼 리더십의 중요성과 무게를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한 사람의 과학자이자 여성으로서 그는 여성 과학자들의 자질과 능력을 계발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2012년 여성과총 부회장을 지냈고 한국여성과학인육성재단(WISET) 전신인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2대 소장(2016-2019년)을 지내기도 했다. 소장으로서 경력단절 여성과학기술인 복귀를 위한 일자리 지원, 여성과학기술인 채용목표제 등을 역점과제로 중점 추진했다.

역량이 있다 해도 혹독한 인사 검증과 청문회 부담 때문에 장관직 제의를 고사하는 게 허다하다. 성배가 될지, 독배가 될지 모르는 장관직 제의를 받아들인 배경도 궁금했다. 그는 이에 대한 즉답 대신 후배들에게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소 일과 삶에서 다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본인의 가치를 높여야 하고 실패를 하더라도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994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된 이래 모두 20명의 장관이 있었다. 그 가운데 여성은 모두 7명이었으며 정치인 행정관료 시민단체 출신이 아닌 과학자 출신은 김명자 유명숙 한화진 3명으로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다. 특히 헌정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을 지낸 김명자 장관도 화학자 출신이라 한 장관과는 공통분모가 많다. 한 장관은 자신이 한국환경연구원 입사 지원서를 냈을 때 면접위원이었던 김명자 숙명여대 교수가 “화학자인데 어떤 연유로 정책연구에 지원했느냐”는 질문한 일화를 전했다. 화학자로서 다져온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답변한 기억이 있는데 면접위원이었던 김명자 교수가 나중에 ‘성공한 환경부 장관’이 된 것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6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야 하는 초인적 일정과 엄청난 업무 속에서 일과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고 있을까. “저는 ‘소확행주의자’입니다.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걷습니다.” 삶의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인사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는 윤석열 내각의 여성 장관인 만큼 “참모와 내각에 여성이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 장관은 “대통령님은 기본적으로 여성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여성이 적은)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한 사람의 여성이 잘해야 다른 여성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한 장관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더욱 크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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