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남편이 벌떡 일어나 오늘 에버랜드 놀러 가자며 아이들을 깨우고 있다. 열리지 않는 눈꺼풀을 애써 올려보는데 영 수월치 않다. 몇 주째 집에서 하루도 쉬지 못해 작심하고 누운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침밥도 미룰 참이었는데 왜 저러누 투덜투덜 겨울 내내 놀이공원 노래를 불렀던 큰아이에게 남편이 지고 말았나 보다.

미루려고 했던 아침을 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하려는 요량에 집 앞 김밥집을 들렀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품 좋은 아주머니가 계신다. 김밥 전문 체인점이 많지만, 굵고 거친 아주머니의 손으로 두툼하게 말아주는 김밥이 더 맛있어 일부러 다리품을 좀더 팔아 그곳을 다니곤 한다. 김밥이 한 줄 한 줄 만들어지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주시니 입도 즐겁고 귀도 즐겁다. 오십줄에 들어선 아주머니의 땀방울이 새로운 채찍질이 되는 것도 그 집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날도 아침 일찍부터 김밥 주문을 해치우느라 바쁜 아주머니를 찾았다.

“놀러가나 보다, 아침부터. 좋겠네.”

“웬걸요. 피곤한데 잠도 못 자구요. 놀러 가는 게 아니라 고생길이에요. 투덜투덜….”

“아이구, 그런 생각하지마. 늙어 봐, 어디 애들이 놀아주나. 난 큰애가 고 3인데, 딸이라도 나랑 얘기도 안 해. 저녁 한 끼 같이 마주 앉아 못 먹는다니까. 하루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어. 나갔다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 꼭 잠그고 나오지도 않고. 밤에 그렇게 혼자 있으면 얼마나 외롭고 서러운데. 내가 나와서 일이라도 하니까 낫지.”

“어머, 딸도 그래요? 저는 아들만 그러나 싶어 딸 갖고 싶다 노래부르는데.”

“아들이든 딸이든 커봐. 엄마 쳐다도 안 봐. 그러니 지금 같이 놀아 달라 할 때 고맙다 하고 놀아줘야 돼. 하하하.”

아침부터 놀러 가는 모습이 땀흘려 일하시는 아주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에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오히려 더 미안해지고 말았다. 밀린 주문도 제쳐두고 먼저 김밥을 말아주시면서 기분좋게 잘 놀러갔다 오라고 인사도 챙겨주시는 아주머니가 마음결을 두드린다.

서른을 넘기면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좀 다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저을 노조차 없는 배를 타고 무작정 흐르는 강물에 떠다니는 것 같다. 시간이 주는 엄포에, 늘어가는 주름에 대한 아쉬움, 제 세상을 향해 떠나갈 자식들에 대한 앞당겨진 그리움들일 터이다. 편안하고 즐겁게 나이 먹기. 늘어가는 주름이 부끄럽지 않고 혼자임이 두렵지 않은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밥집 아주머니처럼 투덕한 손으로 나보다 어린 또 다른 자매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으면 좋겠다.

조유성원 한양대 문화인류학 강사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