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배울살림인문학 아카데미
‘신화와 역사가 말하는 여성 리더십’
1강 마고 여신의 창조하는 리더십

[조셉 캠벨은 문명세계 곳곳에서 악덕과 범죄, 정신질환, 자살, 약물중독, 가정파괴, 무례한 아이들, 폭력, 살인, 절망, 민족간 충돌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어디서 구원의 철학을 찾을 수 있을가를 질문한다(조셉 캠벌, 빌 모이어스, 2017, <신화의 힘>). 그는 사실에 의해 증명된 과학이나 전통적인 사고방식대로의 역사에 대한 문헌 해석만으로는 구원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널리 사랑받은 신화는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해도, 우리 내면의 ‘정신의 사실’을 나타내는 게 틀림없다라고 말한다. 신화는 지혜 전승의 상징이며 인간의 내적 잠재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심리학적으로 올바른 의미에서 ’영적으로‘ 해석할 때, 그 진정한 ’구원의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조셉 캠벨, 2020,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즉 혼동의 시기에 정신적 나침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학 연구에서 신화에 대한 이런 인문학적 접근은 아직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지 못한 감이 있다. 가배울은 2015년에도 여신 신화 중심의 강좌를 진행하여 지역사회에서 나타나는 성과를 본 적이 있고(예를 들면 작은 도서관 교사 들이 마고 이야기를 들려 준 후 아이들과 마고 여신 찰흙 빚기 작업이 바로 이어짐), 이번에도 전남 양성평등기금의 지원을 받아 여성과 신화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었다. 신화가 성평등 문화 형성에 근본에서부터 기여할 수 있는 자원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좌의 핵심을 여성신문에 연재한다.]

‘마고’ 130.5x62.5 cm, Acrylic on canvas, 20009. 사진 제공=서용선 아카이브
마고. 162.5 x 130.5 cm. Acrylic on canvas. 2009. 사진 제공=서용선 아카이브

마고 신화는 동이족 혹은 동북아시아인들이 공유한, 인류 보편의 대모신(大母神, Great Goddess) 신화다. 마고의 계보는 2대 궁희와 소희에서 3대에는 궁희와 소희가 낳은 네 천인과 네 천녀로 이어진다. 마고가 두 딸에게 오음칠조의 음절을 맡아보게 하였고 다시 이 두 딸의 네 아들과 딸이 각각 양의 소리 율과 음의 소리 려를 관장한다. 우주가 우주대폭발의 소리, 빅뱅(Big Bang)과 함께 형성되었다는 것은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델이다. 율려는 음양의 기운을 담은 소리이고 마고 신화는 이 음양 소리의 조화가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마고가 원시 지구인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天水)에 떨어뜨리니 실달대성은 음양기운에 더해 기화수토 4행이 서로 섞여 낮과 밤, 사계절, 풀과 짐승이 사는 지구가 된다. 작의적인 상상이 아니라 깊은 명상에서 지구 생성을 관(觀)하면서 나온 상상력이다. 후천 시대에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성(聲)과 음(音)이 섞인 향상(響象)을 이루었다는데, 향상(響象)은 ‘진동으로 형성된 형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진동으로 땅과 바다, 풀과 짐승의 다양한 형상, 만물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이는 공명이 형태를 만든다는 현대 물리학, 천체 물리학의 논의에 수렴한다. 마고 신화는 공명의 작용으로 지구 생태계가 형성되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네 천인과 네 천녀의 본음 율려 관리만으로는 만물이 잠깐 사이에 태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렇듯 만물 생명의 지속적 유지가 어렵자 마고가 네 천인과 네 천녀에게 명해 서로 결혼하여 겨드랑이를 열어 출산하게 한다. 각 쌍이 삼남 삼녀를 낳았으니 네 천인과 네 천녀가 낳은 최초의 인간은 24명, 12쌍이다. 이들이 몇 대를 거치며 늘어나 각 족속이 3천 사람이 되고 이들이 성을 지키고 향상을 나누어 관리하여 하늘과 땅의 이치를 바르게 밝히니, 비로소 역수(曆數)가 바르게 되었다. 마고신화에서 선조들의 고대 원시공동체에서의 삶은 이같은 천지인 합일을 깨달은 도인들의 삶으로 기술된다. 녹색 운동에서 지구는 온 생명을 번창하게 하고 조화롭게 유지시키는 가이아 여신으로 상징된다. 마고가 다름 아닌 이 가이아 여신이다.

이같이 우주의 도를 깨친 마고성의 삶은 품성이 순정한 인간이 지유(땅에서 나오는 젖)를 먹으며 사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부도지』 5장에서 8장은 마고성의 낙원 생활이 끝나고 인간이 포도를 시작으로 다른 생명을 먹게 되면서 타락하여 마고성 밖의 사방으로 흩어지는 실낙원의 과정을 이야기 한다. 떠나는 이들은 언젠가는 복본(複本), 본성을 되찾는 때가 올 것을 염원한다. 마고 신화가 인간이 우주 율려와 하나 되는 공명을 내는 피리를 불며 지구의 마고성에 살 수 있게 했다고 전하는 이 웅혼하고 아름다운 창세 설화를 이야기로 만들어 전한 우리 조상들의 시작은 언제쯤일까? 피리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불 줄 알고 맨 눈으로 천체 별자리를 관측했고 눈금자를 사용할 만큼 추상적 사고 능력을 지졌던 후기 구석기인들은 미개인들이 아니다. 우주와 하나 되는 경지의 경험을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들려주며 살아왔던 도인들은 아니었을까? 빙하기가 끝나 채집할 수 있는 풀들이 무성해진 신석기 초, 또는 그 직전의 그 어떤 시점에서의 동이족은 『부도지』가 들려주는 마고 신화의 온전한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으며 컸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귀향의 이상은 마고성으로의 복본, 즉 천지인 합일의 본성을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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