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기업 내규 설문조사
10명 중 8명 “’법적 가족’ 이외 가족은 반영 안 돼”

노동자의 4명 중 1명이 내규 및 복리후생 제도와 관련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 이상은 차별을 경험하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2일 ‘기업 내규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기업 내규의 가족 다양성 포함 여부 △가족 형태에 따른 내규상 차별 실태 △가족 관련 인식 등을 묻는 내용이었으며, 지난 4월 13일부터 5월 8일까지 26일간 온라인으로 진행돼 129명이 참여했다.

“기업 내규에 가족 다양성 반영됐다” 12.4%
차별 겪어도 절반 이상은 “아무 대응 안 해”

가족 형태로 인한 직장 내규 차별 경험 여부(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가족 형태로 인한 직장 내규 차별 경험 여부(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응답자들은 직장 내규 및 복리후생제도의 가족 다양성 반영 정도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법적 가족’ 이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69.0%)”는 응답이 가장 높았으며, “잘 반영되지 않았다(12.4%)”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두 응답을 합치면 내규의 가족 다양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81.4%에 달한다. 반면 “반영됐다”는 응답은 12.4%에 그쳤다.

또한 응답자의 24.8%는 내규 및 복리후생 제도와 관련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차별을 경험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6.3%는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고, 37.5%는 직장 내에 우호적인 사람들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노동자 대변기구를 통해서(18.8%)’ 또는 ‘직장 공식 절차를 통해서(9.4%)’ 문제를 제기한 경우는 10명 중 3명도 안 됐다(중복 답변).

“문제제기를 했다가 해당 규정이나 관행이 개선됐다”는 응답자는 0명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본인에 대해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는 55.6%에 달했다(중복 답변). 응답자들은 “왜 사실혼을 유지하려 하냐”, “(동성 파트너와) 혼인을 반복하며 휴가를 악용하면 어떻게 하냐” 등의 차별 발언을 들었고, “조직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기분”을 느꼈다.

파트너 경조사 못 가고 1인 가구라 소외되고
장남·장녀만 가족수당 인정하기도

실제 차별 사례도 확인됐다. 한 응답자는 “동거하는 파트너의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슬픔에 잠겨 업무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휴가를 쓰지 못해 저녁에나 장례식에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8년간 사실혼 관계였는데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결국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또한 1인 가구나 비혼 가구가 소외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결혼과 육아를 하지 않는 경우 복리후생 중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응답자는 부계 중심적 내규 때문에 차별을 겪었다. △장례휴가를 조부모·백숙부모 등 부계 친척에 대해서만 지급하고 이모·이모부 등 모계 친척은 제외한 경우 △승중(부모가 돌아가신 장손)의 경우 휴가나 비용을 추가 지급하는 경우 △부모와 주거지가 다를 경우 장남과 장녀에 대해서만 가족수당을 인정하는 경우 등의 사례도 나왔다.

직장내규 차별로 인해 발생한 피해(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직장내규 차별로 인해 발생한 피해(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이러한 차별은 결국 ‘생계 부담 증가(71.0%)’, ‘스트레스 증가 및 시간빈곤 발생(48.4%)’, ‘직장 소속감 하락 및 업무동기 저하(48.4%)’ ‘자존감 하락 및 위축(41.9%)’ 등의 다양한 피해로 이어졌다(중복 답변).

“법적 가족이 가족”이라는 응답은 28.6%에 그쳐
소속감·업무 동기 증가 위해 가족 다양성 반영 필요

노동자들의 가족에 대한 인식은 기업의 이런 내규와 달리 확대돼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범위에 대한 인식을 물었을 때 ‘혈연·혼인·입양으로 구성된 법적 가족’이 가족이라는 응답은 28.7%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연인 및 친구(29.5%)’, ‘주거 공간 공유와 상관없이 나와 친밀한 연인 및 친구(24.0%)’,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사람 누구나(9.3%)’ 등 다양한 관계를 실제 자신의 가족으로 인식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에 포함해야 한다는 기타 응답도 많았다.

다양한 가족 포괄하는 직장으로 이직 의향 여부(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다양한 가족 포괄하는 직장으로 이직 의향 여부(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또한 응답자 94.6%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하는 직장이 더 일하기 좋은 노동환경’이라는 데 동의했고, 역시 94.6%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하는 직장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하는 직장으로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77.5%에 달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번 조사에서 기업 내규에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부계 중심적인 내용이 남아있으며 법적 가족 이외의 다양한 가족을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을 확인했다”면서 “노동자들의 가족 경험과 인식은 달라지고 있다. 기업과 사회가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오는 27일부터 △경조사·돌봄휴가 등 직장 내 복리후생에서 인정되는 가족의 범위에 ‘노동자가 지정한 1인’ 추가 △모계·부계 구분 등의 성차별적 조항 폐지를 제안하는 회사 내규 바꾸기 캠페인 ‘선택가족을 인정하는 기업으로 레벨업!‘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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