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웃는 남자’
매혹적인 연출·음악에 사회적 메시지
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뮤지컬 ‘웃는 남자’ 중 ‘그윈플렌’(박강현)과 ‘데아’(이수빈).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중 ‘그윈플렌’(박강현)과 ‘데아’(이수빈).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남자는 항상 웃고 있다. 칼로 입 가장자리를 찢어 만든 미소가 기괴하고 처연하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박효신, 박은태, 박강현)은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다. 귀족들이 기이하게 생긴 아이를 몸종이나 여흥거리로 삼는 잔인한 시대에 태어났다. 아동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에 붙잡혀 칼로 난도질당해 ‘괴물’이 됐다.

그러나 누가 진짜 괴물인가. 그윈플렌은 자신을 괴물로 칭하는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고한 척 약자를 무시하고 짓밟는 귀족들이야말로 괴물임을 고발한다.

‘웃는 남자’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에 기초한 뮤지컬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그윈플렌의 여정을 통해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조명한다. 장엄하고 화려한 무대, 아름답고 구슬픈 음악, 배우들의 출중한 가창력과 호소력 있는 가사로 호평을 받았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그윈플렌을 포함한 주인공들은 비인간적이고 타락한 사회에서 살아남은 소수자들이다. 얼어 죽어가다 구조된 ‘데아’(이수빈, 유소리)는 눈이 멀었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여성이다. 그윈플렌과 데아를 식구로 받아들인 ‘우르수스’(민영기, 양준모)와 극단 배우들도 거칠지만 따스한 사람들이다. 밑바닥 인생이라며 조롱당하지만, 이들은 곳곳에 도사린 폭력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서로 의지하며 나아간다. ‘정상성 바깥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특히 그윈플렌은 사회의 모순에 순응하지 않는 용감한 존재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다”고 조소하고, 자신을 비웃는 귀족들 앞에서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제발 눈을 떠 봐”(넘버 ‘그 눈을 떠’)라고 일갈한다. 자신이 비천한 광대가 아닌 귀족 태생임을 알고도 약자에 대한 연민, 인간다움에 대한 의문을 놓지 않는 인물이다.

화려하고 오만한 권력자, 조시아나 공작(신영숙, 김소향)이 그윈플렌을 만나 외면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직시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삶이라는 무대에 오른 이상 누구도 관객에 머물 수 없다. 계급과 젠더의 틀에 너를 맞추라는 사회에 순응할지, 더 나은 길을 찾아 나설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래서 돌아온 그윈플렌이 데아를 따라 이 세상과 하직하는 결말이 개운하진 않았다. 날개를 막 펼치고 솟구치려던 기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멜로드라마의 틀에 갇혀버린 느낌도 든다. 데아, 조시아나 등 주요 여성 캐릭터들이 다소 납작하게 묘사되거나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지 않은 점도 아쉽다. 

EMK뮤지컬컴퍼니가 만든 두 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2018년 첫 선을 보였고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제7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6관왕,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3관왕, 제6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 제14회 골든티켓어워즈 대상 및 뮤지컬 최우수상까지 4개의 뮤지컬 시상식 작품상을 섭렵해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뮤지컬 ‘마타하리’, ‘레베카’, ‘모차르트!’ 등 흥행을 이끈 엄홍현 총괄프로듀서를 필두로 로버트 요한슨 극작 및 연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등이 참여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강렬한 프롤로그, 여인들이 맨발로 물을 튀기며 춤을 추는 빨래터 장면 등 군무도 볼만하다. 번쩍번쩍 빛나는 귀족들의 공간과 대비되는 거칠고 소박한 우르수스의 마차 등, 가난과 부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낸 연출이 작품의 메시지를 더한다. 8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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