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노동 현실과 문학, 가부장제를 '여성의 눈'으로 비판한 세 분야의 신간이 나왔다. 산문, 시집, 여성학 연구서로 출간된 세 권의 책을 일별해 본다.

김정란 <분노의 역류>

장정임 <마녀처럼>

이숙진 <글로벌 자본과…>

여성주의자들의 3인 3색

정치, 문학, 여성… 우리 사회의 지형 읽기

- 김정란 <분노의 역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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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의 무엇이 한 인문학자를 “내면의 자족적인 영역에 머물러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분노케 했을까. “우리 사회의 참을 수 없는 몰상식함”. 그녀가 답한다. 문학평론가이자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정란씨(51, 상지대 불문과)가 세 번째 산문집 <분노의 역류>(아웃사이더)를 펴냈다.

첫 장에서 저자는 “역사의 계기가 왔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면서 시민이 주체가 된 공화국의 밑그림을 '만두국 만들기'에 비유한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집단과 '조중동'이라 일컬어지는 '거대언론'의 행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 여성의 정치세력화, 친일청산, 정치개혁, 여성의원들에 대한 견해 등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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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장과 셋째 장에는 에세이와 문학에 관계된 글들을 묶었다. 또렷하지 않은 잔상으로, 여러 개의 변주된 장면으로 떠올려지는 고(故) 고정희 시인과의 만남, 김씨의 남편 꿈속에 나타나 “생의 허무와 영속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간 문학평론가 김현, “기지촌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동화된 태도”로 글쓰기를 했던 고(故) 이연주 시인 등 저자의 여성적, 문학적 삶과 지인들에 관련된 일화들이 소개됐다. 불문학자로서 저자는 '인문학 가르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가 사용하는 말들이 “연예인들의 연애담에 비하면 천분의 일의 리얼리티도 갖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무차별한 소비문화의 맥락 안에 놓인다”며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자에게는 버티는 힘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고 자조의 말을 되뇌인다. 그러나 시인으로서 저자는 “21세기의 문학이 근대적 명민함을 확보한 채로 공동체의 연대의식과 이성주의의 편류 안에서 인간이 잃어버린 신성함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시는 내게 해방이자 위로”

- 장정임 <마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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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시를 만나 역사를 만나고 여성을 만났으며 배반과 가난을 견디는 힘을 얻었다.”

페미니스트 문학동인 '살류쥬'의 편집주간이자 경남지역 여성활동가인 장정임씨(56)도 시집 <마녀처럼>(현대시)을 펴냈다. 정신대 문제를 다룬 역사시집 <그대 조선의 십자가여> 이후 12년 만이다.

“고(故) 고정희 시인처럼 시와 투쟁이 한 몸에 녹아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란 평을 얻는 장씨는 '상처받은 몸의 언어'란 부제 그대로 더욱 '살아' 가슴을 파고드는 시어를 들고 독자들을 찾았다. '굴비'의 “욕망도 희망도 모두 절여서/가부장제 끄덕 없는 바위로 눌러/음지에 묵혀두는 그 추운 나날//할머니 어머니 동서 고모 이모/여자는 두름으로 엮이어/운신할 수조차 없네… 힘없이 멎은 그 눈은 말하네/딸아 어서 떠나라/생생할 때 혼자서”, “젊은 첩실 그 화사한 살점 맛있게 잡수시고 큰댁 할머니 삼베올 거친 손도 다 잡수신 할아버지, 쓰윽 입 닦으시고 휘휘 산허리를 먼저 넘어 가버리셨네요”('살 파먹는 할아버지') 등에선 가부장적 관습에 억눌려온 어머니-할머니 세대의 고통을 '파 먹힌 살' '몸' 등에 비유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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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일하러 간단다 아가야''문화결정론-아내''문화결정론-여교사'등에선 “시는 밥이 될 수 없으므로 남편과 아들에게 희생의 더운 밥상 올리지 못”('마녀처럼')한 시인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어머니 아내 며느리 직장 가사의 오중고”('먼 길')를 겪는 여성들의 체험을 생생하게 담았다.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다중적 정체성 탐색

- 이숙진 <글로벌 자본과 로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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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연구자 이숙진씨(41, 대통령비서실 제도개선 행정관)의 신간. <글로벌 자본과 로컬 여성>(푸른사상사). 저자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초국적 유통기업을 수년에 걸쳐 참여관찰한 뒤 우루과이라운드에 의한 유통시장 전면개방 이후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초국적 유통자본의 흐름과 현지화 정책, 초국적 기업의 여성 고용정책과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드러낸다.

저자에 따르면 유통업은 “자본제의 생산관계의 생산적 노동과 가부장적 성별분업 관계의 재생산노동의 이중적 노동이 부과되는 여성노동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부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는 “생산자보다는 소비자로 정체화된 여성들의 역할 때문에 유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그들의 노동자로서 지위가 문제시되지 않았고, 남성중심적이고 생산중심적인 노동운동과 노동과정에 대한 논의들도 서비스산업의 하위 부문에 자리잡고 있는 유통산업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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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여성들은 노동자, 구매자, 지역주민으로서 글로벌 자본에 여성노동의 지위를 협상하거나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협상에 나서기도 한다. 저자는 “글로벌 경제하에서 국가는 무조건적인 탈규제화보다는 무엇을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국가의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시대에 국가와 여성에 관한 성별 직종분리를 약화시키기 위한 쿼터제 등의 제도적 장치나 가사와 양육의 성별분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동기부여, 여성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교육과 재정의 확대 등이 오히려 필요한 작업”이라고 결론짓는다.

이화여대 여성학과를 졸업하고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저자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조건과 '차별'의 실태, 감수성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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