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권 행사, 아내는 소비 재테크 자녀교육에… 남편은 성관계 재산권 이혼에

“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는 제 팔자가 상팔자라는데 저도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에 파묻혀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몰두하죠 …” (36세 전업주부)

“우리가 이 정도 사는 것은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내가 잘 굴려서…”

산업사회가 되면서 여성과 남성의 영역이 가정과 일터로 나누어지면서, 남편은 직장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부인은 가정에서 가사와 자녀 양육 및 가족 성원들의 정서적 안녕을 담당하게 되었다.

부부의 역할이 분리되면서,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기술적 자원과 시간자원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부인이 가정에서 가사와 가족원과 관계된 문제들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성이 직업적 역할로 인해 가정에서 격리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제로 가사와 가족원에 대해 직접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된다. 상대적으로 부인은 가사를 전담하고 자녀양육을 하면서 그 영역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도 습득하게 된다.

부인의 역할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알뜰하게 소비하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동산, 주식 투자 등을 통한 재테크를 하기도 하고, 주변 네트워크를 이용한 발 빠른 정보력으로 자녀를 좋은 학원, 학습지를 선택하는데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는 남편의 재력과 부인의 정보력이 필수라고 한다.

가정 내 주부의 의사결정권이 확대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안하게 살림하면서 남편을 배제하고 의사결정에서 독재를 휘두르는 듯하다.

그러나 가정 내 의사결정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부부의 성생활에서는 남편의 결정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휴일이나 휴가계획, 주택, 아파트 선택에서는 비슷하게, 일상생활비 지출, 값비싼 전자제품울 살 때, 자녀의 교육방침에 관해서는 아내의 결정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내의 결정권이 높은 항목일 지라도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일 뿐, 소비의 내용은 주부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녀와 남편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분리되면서 남편들에게 가정은 편안한 안식처이지만, 여성에게는 가사노동의 일터가 되는 것이다. 가사분담의 실태를 보면 '목수일 '수리' 이외의 가사일은 거의 아내에게 집중되어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도 남편이 가사노동에서 약간의 보조역할을 할 뿐 가사노동의 주체는 여전히 아내다.

“…제가 늦게 들어가는 날이면 남편이 딸을 씻겨서 재우기까지 합니다. 그런 남편이 설거지는 절대로 안 해요. 부엌 설거지감이 가득 쌓여 있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지나가는 말처럼 '자기야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돼?' 하고 물어보면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건 당신 몫 아니야?', 그래요. 그 다음에 하는 후렴이 '힘들면 그만두면 돼잖아'예요. 바로 그 후렴이 듣기 싫어 자존심 상해도,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새벽 2시에 들어가도 설거지는 제가 하고 잡니다.”(37세, 방송국 PD)

또한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 아내의 기여가 컸다고 할지라도 소유권이 남편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재산권을 행사는 데 여성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여성의 의사결정권은 남편의 이해에 부합되는 영역에 그치게 된다. 남편의 영역에 부합되지 않는 영역(예컨대 이혼, 성관계)에까지 부인의 독자적 결정권이 주어지는 일은 없으며, 허용되는 영역 안에서 행사 되는 부인의 결정권 수준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최선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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