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한구석에 기골이 장대한 한 여자가 그림을 베끼고 있다. 이 여자가 모사하는 그림은 '흑백'이다. 이 여자, 정서적으로 심히 불안하다. 툭하면 자살한다고 빨랫줄을 걷어 목에 건다.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 일쑤고 말을 하려고 움찔거리다가도 도로 입을 다문다. 분명 '상처'가 있을 터. 그래, 그 여자의 오빠도 화가였다. 그는 첫 전시회를 열었다가 실패한 것을 비관해 목을 매 죽었다. 그 여자는 그것을 보았다! 이 여자의 꿈과 깊은 상처를 '다 알고 있는' 남편은 무한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한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그림을 못 그리게 한다. 폐쇄된 여자에게 한 여자가 다가온다. “당신의 그림을 보여줄 수 있나요?” 그녀는 단지 그렇게 물었을 뿐이지만 나에게 너의 온 세계를 보여 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올 여성영화제에서 본 영화 <완전히 미친>이란 이야기의 도입부다.

제목을 보고 '살짝 미친' '약간 맛이 간'이 아니라 '완전히 미친'여자는 어떨까 궁금했다. 우린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를 몇 편 알고 있다. 그 여자들은 조용히 미쳐 '19호실로 가서' 가스밸브를 틀어놓고 죽거나 평범한 노란 벽지를 들여다보다가 숨이 막힌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삶 속에서 아니 옥죄고 구속하는, 관심을 가장한 간섭 속에서 여자들은 미미하게 미쳤다가 결국은 완전히 미쳐 세상 밖으로 떠밀려 간다. 넌 사람 구실하기엔 애저녁에 글렀어… 배부르고 등 따시니 할 일이 없구나…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

그럼 <완전히 미친> 여자는? 그녀는(루쓰) 생애 처음인 듯 다른 한 여자(올가)에게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힌다. 다가가서 말하고 웃기 시작한다. 스스로 세상을 무서워한 게 아니라 남편이 제 여자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 가둬놓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 의지로 섰음을 상징하는 것은 붉은 색 드레스다. 게다가 그녀만의 방안엔 황홀한 그림들이 가득 차 있다.

그녀를 '미친 여자'취급한 것은 옹졸하고 편협하고, 그녀가 성공할까 봐 두려워하는 남편뿐이다. 그 남자가 질투를 못 이겨 그녀들의 우정을, 사랑을 이간질한다. 다행히 올가는 시원하게 까발린다.

듣지 말아라, 믿지 말아라, 그는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마지막 장면, 어둠 속에 웅크린 여자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온 남편은 안도한다. 어디로 간 게 아니구나, 다시 살기엔 너무 서투른 보호해야 할 내 여자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순간, 그는 총 한 발을 맞고 꽃다발과 함께 쓰러진다. 그녀, 드디어 '완전히 미친' 후에야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는 대신 그에게 총구를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이다. 살짝만 미쳐서는 제 목을 걸어 매는 짓밖엔 할 수 없다. 맛이 가려면 완전히 가야, 꽃 한 다발을 정조준해서 총을 쏠 수 있다. 꽃 뒤엔 숨은 무언가를 맞출 수 있다. 그래야만 미친년이 아니라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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