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방송의 빈곤가정 돕기 프로그램이나 신문의 달동네 기사를 읽다 보면 번번이 놀라는 일이 있다. 예전에는 분명 아빠들이 가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은데, 어느새 엄마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사랑나눔회에서 매달 보내 오는 소식지를 봐도 그렇다. 그 작은 책자에는 아이들의 진솔한 글들이 자주 실리는데, 글에 등장하는 가족은 대부분 알코올 중독 아빠와 몸이 불편한 할머니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집을 나간 상태다.

한 번 나간 엄마는 전화도 하지 않고 돈을 보내 오지도 않는다. 그런 엄마를 아이들은 애타게 기다리며 행복하게 살 날을 꿈꾼다. 물론 엄마가 함께 살았을 때라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을 상황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엄마만 돌아오면 행복해지리라 굳게 믿는다.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그렇지, 엄마를 하늘처럼 바라고 사는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가다니 정말 무책임한 어른이다 싶어 분노가 일지만, 오죽하면 집을 나갔을까, 엄마의 막다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살고 싶었겠지.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한 남편은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을테고, 게다가 곤궁한 살림에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도 여러 면에서 만만치 않았을 게다. 아이는 자라고 돈 들어갈 구멍은 자꾸 커져만 가는데 남편을 믿느니 차라리 내가 나가서 돈을 버는 편이 나으리란 생각이 들겠지. 아이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할머니가 있으니 자기 피붙이를 설마 굶기기야 하겠어?

모성도 학습

그렇게 집을 나온 엄마가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기술도 없고 학력도 없고 나이만 든 어정쩡한 아줌마를 반겨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필경은 온갖 형태로 운영되는 싸구려 유흥업소로 빠질 확률이 높다. 일단 그런 곳에 발을 디디면 애초에 집을 나왔던 동기 따위는 얼마 안 돼 잊혀지게 마련이다. 또 돈을 모을 전망도 거의 없다. 오히려 업주가 교묘하게 들씌운 빚더미에 눌려 허우적댈 공산이 더 크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나중에는 아예 자포자기하기 십상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마당에 아이 생각이라니.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지 않는가.

가난과 질병에 손주양육까지?

그런데 집 나간 엄마에 대한 내 나름의 이해는 어쩌면 억지스런 자매애의 과시일지도 모르겠다. 빈곤지역에서 오래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지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엄마들의 대부분은 어렸을 적부터 가정의 참맛을 못 느끼고 자랐기 때문에 가족을 어떻게 돌봐야 한다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가 부담스러우면 별 죄책감 없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을 나간 후 아이와 연락을 끊는 거란다. 모성이 학습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아이도 자라서 자기 엄마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이니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할머니가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준다면 그런 문제는 상당히 가벼워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집 나간 여자들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건 실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할머니들 때문이다.

젊은 여자들이 무슨 권리로 자기보다 훨씬 나이든 여자들에게 힘에 부치는 짐을 떠맡기느냐는 거다. 적어도 나이에 있어서만이라도 유리한 고지에 있는 젊은이가 가난과 질병의 이중고도 서러운 노인에게 손주양육의 부담까지 떠안기는 건 정말이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왕 다 산 사람이니까 고생하는 김에 더 하라는 마음 같아 괘씸하다. 아니면 혹시 할머니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주려는 갸륵한 효심?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온 어느 빈곤가족을 보면서도 유독 할머니의 고달픈 모습에 시선이 가는 까닭은 아마 내 나이 탓이겠지.

아무튼 빈곤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대폭 이루어져서 할머니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으면 좋겠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입에서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더 이상 안 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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