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돈쭐 내주러 왔어요”
[여성논단] “돈쭐 내주러 왔어요”
  •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 승인 2022.04.15 17:18
  • 수정 2022-04-15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일명 ‘택배견’으로 불리는 경태 보호자의 인스타그램 캡쳐.
사진=일명 ‘택배견’으로 불리는 경태 보호자의 인스타그램 캡쳐.

경태는 일명 ‘택배견’으로 불리는 강아지다. 뼈가 부러진 채로 버려진 경태를 입양해 정성껏 키운 ‘경태아버지’는 분리불안을 겪는 경태를 집에 두고 일을 나갈 수가 없었다. 3년 전, 택배 차량 조수석에 경태를 태우고 배송 업무를 하는 모습이 퍼지면서 이 부자(父子)는 온라인의 작은 스타가 되었다. 그런 경태아버지가, 최근 경태와 또 다른 반려견 태희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팬(팔로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수천만 원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오리무중인 채로 경태아버지는 잠적해버렸다.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오로지 유기견들의 평온한 삶을 기원하며 큰 돈을 선뜻 보태준 사람들의 사랑은 아무래도 배신당한 것 같다. 최근 논란이 된 경태아버지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생면부지의 강아지 치료비를 수십, 수백만 원 단위로 빌려주는 일이 언뜻 보기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일들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남을 돕는 일 뿐만 아니다. 내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내 신념을 표현하는 일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행위는 과거에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보내는 행위보다 훨씬 유연하고 복잡하게 작동한다. 페미니즘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한 현상에 이러한 행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젊은 여성들이 십시일반 펼친 관련 활동을 열거하자면 양손이 모자랄 정도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별점 테러를 당하자 이에 맞서 몇 번이라도 티켓을 구입하는 ‘영혼 보내기’가 그랬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간되고 유지되고 만들어진 페미니즘 도서, 활동, 단체, 굿즈는 얼마나 많았던가.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동물보호단체에 기부금을 보내거나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것, ‘착한 치킨집’에 들러 음식을 주문하는 일 같은 다양한 소비실천은 정치적 행위이자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 스며들었다.

2000년대 초반 학자들은 소비행위가 정치와 접합하는 과정을 정치적 소비주의, 윤리적 소비 등의 개념으로 포착해왔는데, 사실 소비와 정치의 결합이 아주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19년 거세게 불었던 일본불매운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시기 물산장려운동이 있다. 1996년 잡지 라이프<Life>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 소년이 쪼그려 앉아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는 사진 한 장으로 전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나이키는 시민단체의 압박과 대규모 불매운동 끝에 제3세계에서 노동착취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정치적 소비주의, 혹은 소비자 정치는 주로 개인이 홀로 상대할 수 없는 특정 거대 기업이나 기득권 집단을 대상으로 보이콧(불매운동)을 벌이는 방법을 통해 이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견제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적 소비주의라는 말로 모두 포괄할 수 없는 양상들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해석과 사유를 요청하는 것 같다. 특정한 보이콧에 맞서 바이콧(Buycott)으로 응수하는 현상이 그렇다. 한때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발언을 둘러싸고 누군가는 신세계 보이콧을, 누군가는 바이콧을 선언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뉴발란스 운동화를 사네 마네 다툰 일이 있었다. 또 과거에 윤리적 소비로 불렸던 실천들도 지극히 사적인 개인, 즉 경태아버지처럼 ‘좋은 일’을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나 저소득층 아이에게 치킨을 제공해준 가게, 안경점, 수퍼마켓, 학원 등 이른바 ‘돈쭐’을 내줘야 하는 개인들의 미담을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같은 ‘정치’를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열망, 바로잡고자 한 사회정의, 저항하고자 하는 인식의 틀은 무엇인지 한번쯤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라디오 공익광고를 듣다가 문득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광고 속에서 한 외국인 남성이 “돈쭐 내주러 왔어요”라며 착한 빵집을 방문한다. 배려와 존중을 통해 우리 사회를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바꾸자고 권하는 광고의 메시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 같이 생각하듯,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고민하는 일이 돈쭐 내주러 가는 일로 완성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