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가장 작은 이를 기준 삼자
[만남]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가장 작은 이를 기준 삼자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2.03.27 08:55
  • 수정 2022-04-21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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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이상경 한국방정환재단 이사장
올해 100주년 맞는 ‘어린이날’
“어린이에게 경어 쓰고 존중하자”
소파 방정환의 유훈 되새겨야

 

이상경 방정환재단 대표 ⓒ홍수형 기자
이상경 방정환재단 대표 ⓒ홍수형 기자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100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른들에게 보낸 당부다.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으로 예우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메시지는 혁신적이며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는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해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이 선포됐고, 이듬해 5월 1일 서울 종로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첫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소파 선생이 ‘어린이 선언’과 함께 앞서 소개한 내용을 담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어린이 선언은 유엔의 아동권리선언보다 앞선 것이었다.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192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해 선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엔이 1959년 아동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재단법인 한국방정환재단을 이끄는 이상경(현대리서치연구소 대표이사) 이사장은 “당시 어린이는 힘든 노동에 내몰리거나, 부당하게 멸시나 구박을 받는 일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는 어른보다 새로운 어린이에게 있으니,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자”는 방정환 선생의 외침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했다.

1920~30년대 ‘방탄소년단’ 방정환

소파 선생은 한국 근대 아동문학의 선구자이자 아동 교육가였고 예술가이자 어린이인권운동가였다. ‘애녀석’, ‘아해놈’처럼 낮춰 부르던 아이들을 ‘어린이’라 칭하며 독립된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존중하자고 처음 주창했다. 손병희 천도교 지도자의 셋째 사위로 천도교청년회에서 활동했던 선생은 청년회 산하에 있던 소년부를 ‘천도교 소년회’로 만들었다. 소년회는 창립 1주년인 1922년 ‘어린이의 날’을 선포했다. 그는 당대 스타이기도 했다. “소파 선생이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고 전국을 돌며 구연동화를 하셨는데, 가는 곳마다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 왔다고 한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처럼 팬덤이 강했고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인기였다. 한마디로 선생은 르네상스인이었다.”

한국방정환재단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에게 10년을 투자하라”고 했던 선생의 유훈에 따라 어린이·청소년 사랑 정신을 앞장서서 실천하기 위해 1998년 12월에 탄생했다. 재단은 현재 작은물결문고 지원사업,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연구발표, 지역아동센터 운영, 소파 선생의 활동과 문학작품 연구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선생의 호인 소파(小波)에서 이름 지은 ‘작은물결문고’는 도서관 운영이 꿈이었던 이 이사장의 바람이 담긴 사업으로 소외계층 어린이들이 독서를 통해 꿈과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책을 지원한다. 지역아동센터와 아동·청소년 복지시설에 도서를 보내고 독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공간 전문 서비스 기업인 ‘S&I Corp’가 꾸준히 지원하며 지역아동센터에 책을 보내고 공간 개선을 하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재단은 지난 2019년 8년 연구 끝에 『정본 방정환 전집』(5권·창비)을 출간했다. 동화·동요·동시부터 소설과 평론, 산문과 희곡까지 소파 선생의 작품과 글 전체를 모은 정본 전집이다. 재단의 지원 아래 학자들이 작품 발굴에 나섰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간행 및 편찬위원회를 거쳐 완성된 방대한 자료다. 이 이사장은 “선생이 30여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해 그의 작품인지를 가려내는데도 많은 노력이 들었다. <어린이> <신청년> <신여성> 등 선생이 여러 잡지를 창간했는데 많은 필자를 구하기 어려워서 많은 글을 직접 썼고, 같은 이름이 반복해 등장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필명을 여럿 둔 것 같다. 탐정소설은 ‘북극성’, 외국동화 번역은 ‘몽중인’, 유머 칼럼은 ‘깔깔 박사’로 매체, 글에 따라 다른 필명을 썼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상경 방정환재단 대표 ⓒ홍수형 기자
이상경 방정환재단 대표 ⓒ홍수형 기자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자 

이 이사장은 2006년 아버지가 재단에 재산 일부를 기증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고 16년째 재단에 몸담고 있다. 아버지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늘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 하셨다. 당시 기부처를 찾고 있던 와중에 재단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버지가 재단에 기부를 결정하셨고, 제가 이사로 참여했다가 2008년부터 이사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을 거쳐 1987년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현대리서치연구소를 세운 기업가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2021년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조사대상 22개국 중 22위에 머물렀다. 2016년 82점에서 2021년 79.5점으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를 기록했다. 주관적 행복지수는 어린이가 스스로 느끼는 건강상태, 학교생활, 삶의 만족감, 소속감, 어울림, 외로움 등을 종합적으로 집계한 결과다. 세부 지표를 보면 ‘주관적 건강’과 ‘삶의 만족’은 꼴찌였고, ‘외로움’도 21위를 기록했다. ‘돈’, ‘성적 향상’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매우 또는 대체로 행복하다’는 응답이 가장 적었다. 이 이사장은 “경제성장에 비해 어린이들의 행복은 더디게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GNP 수준은 세계 상위권에 올랐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경제적 수준에 비해 삶의 만족도는 더디게 오르는 것이다. 특히 ‘부모와 함께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저녁식사를 하는 비율’은 71%로 OECD 평균보다도 낮은 편이다. 부모가 직장에서 늦게 끝나다 보니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도 가장 먼저 부모를 꼽는 아이들이 적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것이 부모가 자녀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는 아닐 거다. 장시간 노동시간 같은 어른을 둘러싼 환경이 아이들의 행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되는 기적을 이뤘으나, 기쁨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어린이의 문제가 아닌 어른의 몫이라는 이야기다.”

이 이사장은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기준과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때라고 했다. 그동안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정해진 세상의 잣대를 가장 작은 어린이를 기준으로 삼아보자는 제안이다. 어린이를 기준으로 하면, 결국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보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난다. 어린이가 넘어서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노인에게도 생긴다. 성별에 따라 다르지도 않다. 세상의 기준을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과 소수자를 기준으로 바꾼다면, 그것은 결국 모두를 위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최근 삶의 우선순위 바꾸기에 한창이다. 우선 35년간 일군 현대리서치연구소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기 위한 작업을 마쳤다.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예정이다. “제가 떠나도 현대리서치연구소라는 이름이 계속 남아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했다. ‘비록 작은 물결일지라도 대파, 즉 큰 파도가 돼 점차 확산하길 바란다’는 소파 선생의 말을 그는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2022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 맞아 행사 풍성

한국방정환재단은 2022 어린이날 선포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연구사업부터 공모전, 인권물결e캠페인, 걷기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전쟁과 냉전시대, 어린이인권을 말하다’를 주제로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과 공동주관으로 ‘세계의 어린이문학, 어린이문학의 세계’ 행사를 연다. 제5회를 맞는 ‘다새쓰방정환문학 공모전’도 밝은미래 출판사와 함께 개최할 예정이다.

공모전도 다채롭게 진행한다. ‘어린이선언’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어린이가 직접 새로 만들어보는 어린이선언 공모전부터 인권달력 공모전, 어린이날 노래 공모전도 진행한다.

‘혐오를 부추기는 사회, 어린이 인권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소파처럼 인권물결e캠페인’을 펼치고 비대면 시대에 발맞춘 도서나눔사업과 어린이 100명과 독서짝꿍을 맺는 ‘독서짝꿍 손.소.독(손편지로 소통하는 독서짝꿍)’도 진행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작은물결대학생봉사단인 ‘물결이’ 주최로 걷기대회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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