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릴 거야” 피해자 목 죄는 가해자의 ‘자살소동’
“죽어버릴 거야” 피해자 목 죄는 가해자의 ‘자살소동’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3.26 16:52
  • 수정 2022-03-26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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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돼 소송 중인
박진성 시인 ’셀프 부고’ 소동
피해자들 “가해자 자살 소동, 또 다른 가해”

데이트폭력·스토킹 가해자
자살·자해 협박 사건도 늘어
전문가들 “피해자 죄책감 이용해
가해자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폭력” 
젠더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자살 소동’이 끊이질 않는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미끼로 피해자나 여론을 통제하려 드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고 강조한다. ⓒShutterstock/이은정 디자이너
젠더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자살 소동’이 끊이질 않는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미끼로 피해자나 여론을 통제하려 드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고 강조한다. ⓒShutterstock/이은정 디자이너

젠더폭력 가해자들의 ‘자살 소동’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살 협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젠더폭력 피해 상담·지원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취약한 심리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갖는 양가감정을 이용해 통제하려 드는 것이라고 본다. “자살을 미끼로 피해자나 여론을 통제하려 드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고도 강조했다.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피해자들과 소송 중인 시인 박진성(44)씨. 지난 14일 그의 SNS에 박씨 본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으나 머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19일 박씨와 그 부친이 직접 사과 영상을 올렸다.   ⓒ박진성 시인 SNS 계정 화면 캡처
ⓒ박진성 시인 SNS 계정 화면 캡처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피해자들과 소송 중인 시인 박진성(44)씨. 지난 14일 그의 SNS에 박씨 본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으나 머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19일 박씨와 그 부친이 직접 사과 영상을 올렸다. ⓒ박진성 시인 SNS 계정 화면 캡처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피해자들과 소송 중인 시인 박진성(44)씨. 지난 14일 그의 SNS에 박씨 본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으나 머지 않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19일 박씨와 그 부친이 직접 사과 영상을 올렸다. ⓒ박진성 시인 SNS 계정 화면 캡처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박진성 시인
극단적 선택 암시했다 번복·사과
2차가해 겪은 피해자 “사회적 살인미수”

“박진성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피해자들과 소송 중인 시인 박진성(44)씨의 페이스북에 지난 14일 올라온 글이다. 그의 ‘자살 소동’은 처음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올라온 글은 무게가 달랐다. 사실이 아니었다. 이튿날 박씨가 살아있다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오고, 19일 박씨와 그 부친이 직접 유튜브를 통해 사과하며 소동은 일단락됐다.

피해자들은 당혹해했다. 피고소인이 자살 등으로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관련 수사가 종결되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은 계속 진행되나 혼란에 빠진 몇몇은 “박씨가 정말 사망했고 이렇게 사건이 끝나는 것이라면 우린 어쩌면 좋으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한 피해자는 부고글이 올라오자 모든 SNS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다.

박 씨의 사망 소식에 피해자 비난 여론도 일었다. 수사·재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거짓 미투 피해자가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죽었다’며 공격하거나, 소송 중인 피해자를 향해 ‘박씨의 죽음에 아무 감정도 없느냐’라고 묻는 누리꾼도 있었다.

박진성씨의 성희롱을 공개 고발하고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김현진 씨는 박씨의 자살 소동 후 일부 SNS 유저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트위터 화면 캡처
박진성씨의 성희롱을 공개 고발하고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김현진 씨는 박씨의 자살 소동 후 일부 SNS 유저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트위터 화면 캡처

2016년 박씨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공개 고발하고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김현진 씨는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를 통해 15일 입장문을 냈다. “박 시인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자살, 자살 시도, 자살 시늉 모두에 대해 무책임을 넘어 피해자들을 향한 가해임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라며, “그런 가해자들의 선택이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살인미수임을 사회가 함께 공감하고 인식해주시길 간곡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여성신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들은 힘이 빠진다. 가해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그가 저지른 일들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싸울 힘이 없어서 침묵하고만 있는 피해자들도 많다. 그런데 온라인에는 허위사실과 2차 가해가 판친다. 제가 ‘박씨의 성희롱이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는데도 여전히 ‘무고녀’로 낙인찍혀 있다. 몇몇 언론도 ‘허위 미투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식으로 보도하더라”라고 말했다.

데이트폭력·스토킹 가해자
자살·자해 협박 사건 늘어
“신고했다 더 큰 일 날라” 대응 못 해

“신고하지 말자. 더 큰 일 날라.” 지난해 정예리(가명·24세) 씨가 내린 결론이다. 2020년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 김상우(가명·25세)씨는 정씨에게 집착했다. 정씨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찾아와 종일 감시했고, 정씨가 잠든 사이 휴대전화 지문 인식을 풀고 문자메시지 기록이나 SNS 계정을 뒤졌다.

정씨가 김씨에게 헤어지자고 한 2020년 12월 24일, 김씨는 이런 문자를 수십 통 보냈다. “난 너뿐인 거 내가 죽어야 믿겠지”, “그냥 사라져 줄게 이게 내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 “이렇게 사느니 내 발로 지옥 가야지”. 두려워진 정씨는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다 결국 김씨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남자는 곧 돌변했다. 정씨에게 욕설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빼앗아 길바닥에 던지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정씨 앞에서 “죽어버리겠다”며 커터칼을 꺼내 자신을 찌르는 시늉도 했다.

그러나 정씨는 경찰 신고도, 접근금지 신청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충분히 보호받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제가 주말마다 걔를 피해 친구 집이나 본가에 갔거든요. 절 따라다니며 주소를 다 알아냈더라고요. 경찰 부른다고 하니까 “혼자 못 죽는다. 니가 XX년인 거 세상에 알리고 갈 거야”래요. 자극하면 안 되겠다. 경찰이 이런 것만으로 움직이지도 않잖아요.”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자살 협박’ ‘데이트폭력’ 등 키워드로 검색하면 고민 상담글이 다수 나온다.  ⓒ네이버 지식인 화면 캡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자살 협박’ ‘데이트폭력’ 등 키워드로 검색하면 고민 상담글이 다수 나온다. ⓒ네이버 지식인 화면 캡처

젠더폭력 피해지원 전문가들
“‘자살 소동’, 피해자 죄책감 이용해
가해자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폭력
피해자 위축시키고·2차가해 유발하기도” 

실제로 온라인에는 정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글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자살 협박’ ‘데이트폭력’ 등 키워드로 검색하면 고민 상담글이 다수 나온다. “전 남친이 매일 찾아와 자꾸 협박하고 자살한다고”(3월 9일), “헤어졌는데도 계속 집착하고 맨날 카톡으로 자살 암시하고”(2월 25일),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자살 협박, 유서 협박, 스토킹 등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2월 16일), “남자친구가 술먹고 집 안의 기물을 부수고 칼을 들고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고 절 때렸습니다. 녹음 자료만 있는데 신고 가능한지요?”(1월 28일), “남자친구에게 스토킹 접근금지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이별을 말하면 자살소동을 벌여 응급실까지 다녀왔습니다. 죽고 싶습니다”(1월 10일) 등이다.

가해자는 왜 자살하겠다고 할까.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여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자해나 자살을 하겠다’고 통보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애정 또는 신뢰에 기반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경우, 피해 여성은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연민을 갖고 가해자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마음을 악용하는 행위”라고 했다. 또 “이런 경우 내담자에게 ‘자살 협박 자체가 폭력이다. 가해자가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해도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젠더폭력 가해자의 ‘자살 소동’은) 실행 여부를 떠나 피해자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피해자 탓’이라는 여론을 형성하고 2차 가해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 나서는 피해자들

한편 박진성씨는 자신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한 김현진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2021년 5월 21일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노승욱 판사는 김씨가 겪은 피해 사실이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또 박씨가 김씨를 가리켜 “무고 범죄자”라며 주민등록증 등 개인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한 행위 등에 대해 위법성이 인정된다며 1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박씨가 항소해 청주지법에서 민사소송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김씨는 박씨를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형사 고소했고, 이 사건은 대전지검에 배당됐다.

박씨는 자신에게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는 후배 시인 유진목씨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1심에서도 패소했고,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인 정씨는 전화번호를 여러 번 바꾸고 이사를 거듭한 이후 올해 초부터 가해자 김씨와 연락이 끊겼다. 최근 개정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가해자에게 범칙금 몇만원 수준이 아닌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료를 모아 고소를 검토 중이다.

[고침] 2일 오후 4시52분 출고된 <“죽어버릴 거야” 피해자 목 죄는 가해자의 ‘자살소동’> 기사 중 박진성 씨가 현재 성범죄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성범죄 피고소인이 자살 등으로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모든 관련 수사가 종결되기 때문이다.”는 “피고소인이 자살 등으로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관련 수사가 종결되기 때문이다.”로 수정됐습니다.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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