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가족 차별 부추겨”…헌법소원·폐기 등 추진

■내년 시행 건강가정기본법 논란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건강가정기본법이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강조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차별적이며 헌법정신에도 어긋나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4일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가 주관한 건강가정기본법 진단 토론회 '건강가정, 있다/없다'에서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등 참석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주장했다. 당초 이 토론회는 건강가정기본법의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마련됐으나 발표자들은 물론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 법의 기본정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 끝에 '폐기'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기본단위로 규정하는 한편, 별도로 가정을 '부양·양육·보호·교육' 등이 이뤄지는 생활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건강가정'을 정의하고 이를 저해하는 문제의 발생을 막기 위해 건강가정사, 건강가정지원센터, 이혼예방과 같은 '건강가정사업'을 제시했으며 이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법은 모든 국민이 가정의 중요성을(4조),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8조) 인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교수는 “건강가정기본법의 제정 과정에서 불거진 '건강가정' 담론은 새롭게 포장한 신(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건강가정'이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추론하게 하고 열등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하나의 특정한 가족형태를 특권화시킨다는 것이다.

이혼률 증가와 출산률 하락 등 이른바 '가족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이 법이 나왔다는 점에서 건강가족의 형태는 결국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가족내 여성억압과 갈등을 외면한 채 비전형적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박혜경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가정의 정의에서는 가족중심적이고 건강가정지원사업은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어 모순된다”며 “현실적으로 다양해지는 가족에 대해 대응해야 하는 필요와 좁게 가족을 정의하고자 하는 의도 사이에서 빚어진 혼란”이라고 비판했다.

조은희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도 “혼인출산과 가족유지 등을 국민의 의무로 규정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할 수 있어 위험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관련되는 다른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경우, 이 법에 부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신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일반 원칙에도 어긋나고 이와 관련된 장래의 입법자를 구속하는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사업학과 교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그 취지를 실제 정책으로 실현할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건강가정기본법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 참석자들은 폐지를 하든, 개정을 하든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입장을 같이 했다. 이재경 교수는 “법 개정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며 “법 폐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은희 연구위원은 “이미 법이 제정된 만큼 법 안정성에서 폐지보다는 개정이 현실적”이라며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자”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유경희 소장은 “오늘 논의된 다양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에 의견서를 전달할 것”이라며 “법적인 검토와 여성계 네트워크 논의를 거쳐 향후 방향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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