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차이 넘는 여성연대, 고정희 시인에게 배우다
갈등·차이 넘는 여성연대, 고정희 시인에게 배우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1.12.05 17:08
  • 수정 2021-12-08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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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하나의문화, 4일 고정희 시인 30주기 포럼
“정실/독신녀 이분법이 자매애 걸림돌...
갈등·차이 존재해도 여성해방 위해 연대”
ⓒ(사)또하나의문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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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시인 30주기 기념 포럼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고정희와 기쁨의 기술’이 4일 한국여성재단 박영숙홀에서 열렸다. (사)또하나의문화가 주최한 이날 포럼은 여성문학의 선구자인 고정희 시인을 기리고, ‘민중, 여성, 공동체’라는 시인의 화두를 이어가고자 마련됐다.

고정희 시인은 1980년대 여성주의 출판문화운동의 전개 과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문 동인지3호 「여성해방의 문학」 기획을 주도했고, 권두시 ‘우리 봇물을 트자’에서 “오랫동안 홀로 꿈꾸던 벗”에게 함께 더 큰 물줄기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김정은 문학연구자(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는 “(시인은) 여성들이 지지와 연대를 통해서 가부장제의 토양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도 ‘고글리(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 작업도 하는 이들의 마을)’, 시인의 고향 해남에서 매년 열리는 추모문화제 등, 시인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김 연구자는 “‘저자’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고정희가 여성들과 연결되며 혹은 여성들을 연결시키며 만들어나갔던 문화적 움직임 역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했다.

(사)또하나의문화는 4일 고정희 시인 30주기 기념 포럼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고정희와 기쁨의 기술’을 한국여성재단 박영숙홀에서 개최했다. ⓒ(사)또하나의문화 제공
(사)또하나의문화는 4일 고정희 시인 30주기 기념 포럼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고정희와 기쁨의 기술’을 한국여성재단 박영숙홀에서 개최했다. ⓒ(사)또하나의문화 제공

고정희 시인이 말하는 여성 연대란 ‘단일한 여성’들의 만남과 결속이 아니다. 시인은 여성운동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성들 간 차이와 갈등을 뛰어넘는 연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혜진 연구자(성균관대)는 이에 주목해 고정희 시인의 1990년작 『여성해방출사표』(동광출판사)를 비평했다. 시인은 여성을 “정실부인”과 “독신녀”로 나누는 이분법이 당대 “여성들의 하나됨(자매애)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성찰했다. 많은 여성이 이성애, 출산, 육아 등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여성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여길 수 없다고 봤다.

고정희 시인은 여성운동 내부의 엘리트주의(“시 한 편 없이도 살만 찌는 주제에”)와 섹슈얼리티(“사랑장사를 말로만 하시나요 외로움 같은 거 아시기는 아시나요”, “나는 머릿속에 오직 남자밖에 든 게 없는 여자를 좋아합니다(좋아하려고 목하 노력합니다)”), 여성성(“나는 사랑받는 여자예요”, “나는 현모양처예요”, “나는 슈퍼우먼이야요”, “여자의 본분은 희생봉사 아니에요”), 운동론(“그토록 자부하는 풍요의 식탁에는 여자민중이란 메뉴도 있나요”, “요즘 왜들 불그죽죽 물드는지 모르겠어요/ 과격한 행동은 곤란하잖아요”) 등 차이와 대립에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그대와 나를 갈라놓았는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물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걸어갔고/ 우리 이모와 고모가 걸어갔고 오늘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내일은 우리 딸들이 가야 할 이 길,/ 이 길에 울연한 그대 모습 마주하여” “동지의 뿌리를 만”나기를 소망했다. 정 연구자는 시인이 “이항 대립을 넘어 존재의 다수성을 말하고 본질론을 비판하며, ‘여성해방 역사의 주체’로서 여성 주체화의 급진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고정희 시인의 시집 『여성해방 출사표』(1990) ⓒ여성신문
고정희 시인의 시집 『여성해방 출사표』(1990) ⓒ여성신문

 

불평등 냉혹한 자본주의 꾸짖고
소외된 이 끌어안는 사회적 실천 강조

고정희 시인은 불평등에 맞서 단단한 성찰을 벼려온 시인으로 꼽힌다. 냉혹한 자본주의를 꾸짖고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는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시를 다수 남겼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은 “고정희 시인의 죽음 이후 30년이 지났어도 그의 시가 계속 살아 새롭게 읽히는 까닭은 시인이 체감하고 공감했던 세상의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행, 청빈, 묵상’의 수도원적 영성을 시와 삶에서 추구한 고정희 시인과 자본주의와 국가, 가족과 학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해체하고 재구성한 ‘또문’ 동인들”은 “이기적 자기애의 세상에서 실현한 공동체적 자매애의 기쁨”이자 “‘사회적 영성’의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도 이날 발제를 맡아 “어린이를 주제로 한 동인지를 위해 썼던 그녀는 구멍 팔아 밥을 사는 여자들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에도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재난의 시대를 물려받은 이 아이들을 위해 그는 어떤 시를 썼을까”라고 물었다.

이날 제8회 고정희상 시상식도 열렸다. 개인상 수상자로 고현주 사진작가, 단체상 수상자로 ‘몸춤’이 선정됐다.

고 시인은 1948년 해남군 삼산면 송정마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현대시학’에 시 ‘부활 그 이후’, ‘연가’가 추천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눈물꽃』, 『지리산의 봄』, 『무덤 위에 푸른 잔디』, 『실락원 기행』, 『초혼제』 등이 있다. 1980년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전남일보 기자,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크리스천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편집주간 등을 지냈다. 여성신문의 창간선언문, 표지글 ‘자매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집필했다. 1991년 6월9일 지리산 등반 중 급류에 휘말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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