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 - ‘너에게 가는 길’
[기고]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 - ‘너에게 가는 길’
  • 강이영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한국상담심리학회장
  • 승인 2021.11.11 14:56
  • 수정 2021-11-11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성소수자부모모임이 4년간 공들여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감독 변규리)의 시사회에 다녀왔다. 커밍아웃을 한 자녀와 부모의 일상을 인터뷰로 만든 영화다. 영화를 본 후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동감(同感)과 감동(感動)의 눈물이 났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만든 것이다. 보기 전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영화일 것이라 예상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 마음 안에서 이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는 ‘너’에게 가는 길이자 ‘나’에게 가는 길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가는 길을 보여준다. ‘성소수자’라는 단어 속의 ‘소수자’라는 표현조차 어색할 만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의 다큐멘터리이고, 인터뷰다.

주인공은 성소수자가 아니다. 성소수자인 자녀와 그 부모다. ‘이성애자’인 부모의 ‘성소수자’ 부모 되기다. 보다 보면 영화의 자녀가 ‘이성애자’인지 ‘성소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녀’와 ‘부모’일 뿐이다. 

성소수자인 자녀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수용하기 위해 혼자만의 어려운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그 후에도 부모나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인정과 수용을 받기 위한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웅신화로 설명한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길… 내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수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시사회장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의 편견을 마주해야 했다. 편견이 없는 척하며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선(線)을 긋고 있던 나를 깨달았다. 내 안에는 그 선이 이성애자와 성소수자를 갈라놓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이어져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이 세상의 진실을 멀리하고, 기득권자로서의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렸고 반성했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갈등도 없이 받아들여지는 당연한 일, 사소한 일상이 주인공들에게는 갈등과 투쟁이 돼야 한다. 이를 담담히 그리고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감동이 진하게 전달되고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난다.

내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수용해달라고 말하는 것조차 법적인 테두리와 편견 속에서 차단된다. 화장실에 가는 것, 옷을 갈아입는 것, 연애를 하는 것, 대학에 가는 것, 직업을 갖는 것… 성별로 나눠진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와 기존 질서에 다 부딪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수용해주길 바라는 행사를 자신의 경계를 흔들어 버리는 일이나 자녀에게 전염되는 일로 절규하는 ‘그들’도 이해가 된다.

이 영화는 “너는 이런 작은 일상에 흔들려 봤는가?”, “너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때를 일상 속에서 경험해 봤는가?”라고 묻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다. 자녀와 부모가 모두 흔들림 속에도 때로는 강직하고 때로는 유연하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엣나인필름/연분홍치마

영화의 마지막에 한결의 어머니 ‘나비’가 이렇게 말을 한다.

“당신이 고통 중에 있는데 가족이 있다면 다행이다. 당신이 고통 중에 있는데 가족이 없다면 더 다행이다. 그러면 당신은 더 성장할 수 있을 테니….”

우리 안에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중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다.

변규리 감독, 주인공 ‘나비와 한결’, ‘비비안과 예준’, 성소수자부모모임 그리고 성소수자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나는 편견이 있다”는 사람들, “나는 편견이 없다”는 사람들 모두 이 영화를 보라고 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본다면 내 안의 편견이 겉으로 드러나 있든, 내면에 있든 나의 편견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너에게로 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 되길….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