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당하거나 희생하거나…

~b3-2.jpg

영화 <실미도>가 관객 10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특히 20년 만에 영화관을 찾았다는 40, 50대 남성 관객의 반응이 뜨거운 가운데 '남자 영화'라는 지적 속에서도 적지 않은 여성 관객이 들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영화 <실미도>에 무엇이 있길래.

독과점에 가깝게 배급, 홍보가 잘 이루어졌다는 점, 역사 속의 희생양 복원, 현대사 속에 녹아난 스펙터클, 비판이 전무했던 시대에 대한 보상심리, 과거에 대한 향수, 금기의 소재를 영화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 등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려 수백만 명의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게 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잘 만든' 영화라는 평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분단, 이념 대립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개인에게 가해졌던 구조의 폭력을 문제삼고자 했으나 본질적으로 군사주의, 전체주의에 균열을 가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라는 지적. 특히 영화 속에서 여성이 다루어진 방식은 평론가들의 비판을 면키 어렵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남자들간의 수직적인 의리, 충성, 남성의 몸에 대한 단련 등 70년대가 가졌던 남성 중심적인 이데올로기가 여실히 드러난다”면서 “특히 여자의 강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마초적인 발상”이라 지적한다. 영화평론가 김영옥씨 또한 “영화에서 여성이 남성들에 의해 호명되는 방식은 강간당하는 여성과 태곳적 어머니 두 가지다. 모두 극한적 고립공간에 갇혀 있는 남성들에 의해 현실의 여성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환각적으로 불러내고 있는 대상들”이라 분석했다.

유지나씨는 “남자들만의 세상에서 추락하는 것을 낭만화하고 있는 영화, 군대에서 겪은 고생과 억울함을 파워를 갖는 것으로서 상쇄하는 군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라 비판했다.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씨는 <실미도>의 흥행을 “마초들이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사회 분위기와 꽃미남이 강조되는 문화의 반작용으로 현실에 없는 강한 남성성에 대한 향수가 작용한 것”이라 설명한다.

한편 많은 40, 50대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 김씨는 “버려진 세대의 보상심리”라 분석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시대의 실존 인물들이자 목적을 위해 기계처럼 훈련받아야 했던 기성세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그 세대는 나라에 기여했다 생각했지만 40대, 50대 실직 등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것.

일각에선 아무런 성찰 없이 영화 산업의 흥행이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등식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옥씨는 “영화가 군사주의 문화의 주체였던 남성들에게 더 큰 폭력의 메커니즘의 희생자라는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당시 중앙정보부와 미국의 관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배제한 채 한국이라는 영토만을 다룬 것은 시야의 좁음을 느끼게 한다”면서 “여전히 우리의 일상 문화를 뒤흔들고 있는 문화 양태에 대해 사람들이 안심할까 우려된다”는 말을 전했다.

임인숙 기자isim123@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