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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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에게 한창 뜨고 있는 영화 <내 사랑 싸가지>를 보는 내내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영화의 배경은 분명 2003년인데, 극중 남녀 주인공을 둘러싼 스토리와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선가 본듯 낯익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로 찬 음료수 캔이 운전자의 머리를 때리면서 '노비'와 '주인님' 관계로 얽히게 된 하지원과 김재원. 연신 '야!''죽을래'로 시작되는 대화는 필요한 설정이겠거니 다소 듣기 불편했지만 참았다.

그러나 하지원의 '망가진' 연기에 힘입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게 만든 몇몇 코믹한 장면들이 지나가고 적당히 유치한 로맨스로 영화가 무르익을 무렵 어느새 노비와 주인님의 관계는 오빠, 동생의 관계로 바뀐다. 그리고 슬쩍 연인관계로 발전한다.(심지어 극중에서 김재원은 친구에게 “노비가 애인 되고 그러다 마누라 되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의 연애문화를 보자면, 이런 관계가 비일비재하다. 남녀관계가 다 그렇고 그렇지 않느냐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오빠는 아버지와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

'오빠'란 호칭에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가 투영되어 있는 셈이다. 어찌됐든 김재원을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엽기 발랄했던 하지원은 갑자기 조신해지면서 모범생이 된다.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했던 그녀지만 김재원과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다니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리곤 불합격인 줄 알았던 대학에 붙는 순간 김재원이 짠하고 나타난다. 그것도 아주 로맨틱하게. 그제서야 영화가 이해됐다. 아, 이런 영화구나.

영화 <내 사랑 싸가지>는 여고생과 대학생의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케케묵은 남녀관계의 도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아니, 현실이 그런지도 모른다. 여하튼 기존의 남녀관계, 규범적인 것들을 도발하는 여고생은 어디 없나. 그런 캐릭터를 보고 싶다.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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