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올림픽, 다양성의 아름다움
[정진경 칼럼] 올림픽, 다양성의 아름다움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21.08.13 11:34
  • 수정 2021-08-17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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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탁구 대표팀의 신유빈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복식 경기에 참여해 미소짓고 있다. ⓒAP<br>
대한민국 여자 탁구 대표팀의 신유빈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복식 경기에 참여해 미소짓고 있다. ⓒAP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문제를 올림픽으로 덮으려는 일본 정부의 속셈이 못마땅해서 올림픽을 보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그리 철저한 사람은 못 되나 보다.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벌인 한바탕 스포츠 축제는 어쨌든 재미있어서 이 주간 티브이에 빠져 지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리는 현장은 늘 재미있다. 한데 이번엔 특히 다양한 체격의 선수들이 내 관심을 끌었다. 물론 선수 중 절대다수는 젊고 키 크고 근육질인 전형적인 운동선수 몸매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의외로 아주 많았다. 높이뛰기 선수들은 기린 같았다. 저렇게까지 가늘고 긴 몸이 저렇게 튼튼하고 효율적일 수 있구나 하고 놀라웠다. 반면에 체조 선수들은 작고 단단한 몸매로 대단한 기량을 드러냈다. 키가 아주 작은 선수들도 꽤 있는데, 모두가 균형 잡힌 몸으로 놀라운 기술과 힘을 뿜어냈다.

많은 게임에서 큰 키가 유리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선수가 이기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펜싱에서는 우리 선수가 긴 팔 긴 다리의 유럽 선수의 빈틈을 귀신같이 공략해서 박수를 치게 했고, 배구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큰 외국 선수들을 상대로 잘도 스파이크를 때려서 탄성을 자아냈다.

‘외팔 선수’로서 비장애인·장애인 올림픽 모두 출전하는&nbsp;폴란드 탁구 대표팀 나탈리아 파르티카 선수. ⓒdeccan herald&nbsp;
‘외팔 선수’로서 비장애인·장애인 올림픽 모두 출전하는&nbsp;폴란드 탁구 대표팀 나탈리아 파르티카 선수. ⓒdeccan herald&nbsp;

탁구 여자 단체전을 보다가는 내 눈을 의심했다. 복식 게임을 한참 보다 보니 폴란드 선수 하나가 오른손이 없었다. 오른팔이 팔꿈치 조금 아래까지만 있는데, 팔꿈치 안에 공을 얹어서 서브도 하고 땀도 닦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게임을 했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그 선수에게 나는 존경을 바쳤다.

제일 내 관심을 끈 것은 여자 포환던지기 선수들이었다. 하나 같이 고도비만의 거구다. 쇠공을 멀리 던지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려면 그런 체격이 필요한가 보다. 나는 들지도 못할 것 같은 쇠공을 20m 넘게 던졌다. 아니, 저런 일이 가능한가! 네 번째 올림픽 출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중국 궁리자오 선수는 그 모든 노력이 가치 있었다며 자기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 무거운 쇠공을 아마도 20년은 던져오지 않았을까. 은메달을 딴 미국의 레이븐 손더스 선수는 부상과 정신건강 문제를 극복하고 참가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수상이 성소수자들,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 미국과 전 세계의 흑인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메달을 딴 뉴질랜드의 발레리 애덤스 선수는 여성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엄마가 되고도 선수로 돌아와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모두 멋지다. 이 선수들은 어린 시절 큰 체구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필리핀의 히딜린 디아즈 선수는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55kg급 1위에 올라 자국에 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국제역도연맹(IWF)
필리핀의 히딜린 디아즈 선수는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55kg급 1위에 올라 자국에 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국제역도연맹(IWF)

그들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외모중시사회에서 놀림감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의 체격을 장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감동을 준다. 다양한 체격의 선수들이 자기 적성에 맞는 종목을 택해 어려움을 이겨 가며 실력을 갈고닦아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섰다. 그들 모두는 그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올림픽의 역사는 성차별과 인종차별 문제로 얼룩져있지만, 한편 그것을 꾸준히 극복해온 과정이기도 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야 모든 종목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출전하게 되었다. 워낙 거대한 행사다 보니 상업주의의 문제도 있고, 잘 살거나 인구가 많은 강대국들이 메달을 휩쓸어 가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자면 사실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올림픽의 아름다움은 내 마음을 움직였다. 각 종목마다 모두가 같은 규칙을 지키면서 공정한 게임을 하는 것이 일단 좋았다. 이 세상에는, 특히 국가 간에는, 불공정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의 대부분이 불공정하지 않은가? 역사는 침략, 강탈, 학살을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최근 코로나 백신의 거래와 분배상황을 보아도 강대국의 욕심은 끝이 없다. 모두가 같은 규칙을 지키는 일이 너무도 없어서 올림픽이 더 돋보인다.

8일 오전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8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세르비아의 경기를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또한 선수들이 불의의 실수가 일어나거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나 같으면 아휴 이젠 어렵겠네 하고 포기할 것 같은데, 저 선수들은 더 힘을 내고 몸을 던지고 뛰어오른다. 한국 여자배구팀처럼 그렇게 해서 역전을 하고 승패를 뒤집는 놀라운 경우도 가끔 생긴다. 경기에서 패하고도 자기 나름의 성취를 기뻐하는 모습, 승자를 기꺼이 축하해주는 모습, 승패를 넘어서 서로 얼싸안는 모습도 다 아름다웠다.

2021년 여름, 유례없는 기나긴 무더위가 걱정스럽고 코로나 확산으로 가까운 사람조차 마음 놓고 만나지 못하는 힘겨운 시절에 이 멋진 선수들은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일본이 최고로 무더울 때 고생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준 올림픽 선수들을 생각하며 나도 무더위를 견딘다.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성역할, 고정관념, 문화간 접촉, 환경관련행동 등의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텃밭과 꽃밭을 가꾸며 사는데, 가끔 세상사를 페미니즘과 심리학의 시각으로 보는 글을 쓰고 있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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