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정만화의 조용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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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의 데뷔 이십주년 기념 단편집 <노래하는 돌> (길찾기)이 출간됐다. 530페이지 분량에 20년 동안 발표한 11편의 단편을 담았다.

김혜린은 1983년 데뷔한 이래 한국 순정만화를 이끈 중견작가다. 그는 탄탄한 드라마를 바탕으로 비근한 현실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사랑을 서정적 그림 속에 담아왔다. 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은 때로는 현실비판적인 사실주의로, 때로는 고대의 무속신앙과 결합한 판타지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전통적 운율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시적 대사는 김혜린 만화의 백미로 꼽힌다. 데뷔작 <북해의 별>은 학생운동권의 필독서로 읽혔다. 순정무협만화의 새 장을 연 <비천무>(1991)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번 이십주년 기념 단편집에는 4년 만의 신작 <노래하는 돌>을 비롯하여 1980년대의 추상적 사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대를 위한 방문자>(1985), 탄광촌을 배경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먹선으로 그려낸 <우리들의 성모님>(1987) 등이 수록돼 있다. 한창 격렬했던 거리 시위를 배경으로 한 풋풋한 러브스토리 <11월의 초상>(1990)과 임신을 둘러싼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의 사연을 대구(對句)형식으로 연출한 (1999)도 일품이다. <샤만의 바위>(1995)와 <로프누르-잃어버린 호수>(1996)에서는 김혜린 장편 특유의 사랑방식을 엿볼 수 있다.

각 작품의 말미에는 작품을 그리던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짧은 작가노트와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실려 있다. 특히 80년대와 90년대 검열에 대한 질문들이 눈길을 끈다.

최근 김혜린은 웹진 we6(we6.co.kr)에 <불의 검>과 <광야>을 연재중이다. <불의 검>은 철기시대 초입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루고 있다. 1992년 연재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팬들을 들뜨게 했던 이 작품이 드디어 완결되는 것이다.

최예정 기자shoo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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