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혁신안은 해결 아닌 시작… 여성연합 운동의 가능성 봤다
[인터뷰] 혁신안은 해결 아닌 시작… 여성연합 운동의 가능성 봤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08.08 10:39
  • 수정 2021-08-10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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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반성과 성찰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혁신위 과정 자체가 혁신의 시작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최예리 인턴기자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최예리 인턴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정보 유출에 대해 사과하고 혁신안을 발표했다. 정보 유출 사건으로 드러난 여성연합 조직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구성한지 5개월 만이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와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16인의 내외부 혁신위원들과 함께 10차례 넘는 회의를 열고 소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혁신안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13인 공동대표단 체제 구성, 여성정치세력화 전략본부 설치, 정치 네트워킹 원칙의 제안, 젠더데이터센터 설치 등을 제시했다. 공동혁신위원장은 “혁신위 과정 자체가 혁신의 시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권김현영·권수현 여성연합 공동 혁신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는 이 사건을 ‘김영순 대표-남인순 국회의원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보 유출 사건(이하 유출사건)’이라고 명명했다. 이름과 여성연합 전‧현직 대표를 명시했는데.

권김현영: 혁신위 구성을 제안한 임시총회가 혁신위에 요구한 역할은 크게 세 가지였다. 여성연합 운동에 대한 진단과 평가, 여성연합의 혁신에 대한 방향과 세부방안 마련, 그리고 유출사건에 대한 기록 및 진단, 평가를 통해 사건을 정확히 명명하는 것이었다. 유출사건을 정확하게 명명하고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들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 혁신위 판단이었다. 유출사건 명명을 두고 관련자 이름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잘못한 사람의 이름을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고, 정보 유출을 한 사람 뿐 아니라 정보를 받은 남인순 의원을 병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오갔다. 남 의원은 ‘피해호소인’ 표현을 쓰는 등 사건 직후 태도가 부적절했고, 선배 여성운동가로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 명시하고 여성연합 대표라고 표기해 사건의 구조적 연결성을 드러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성연합은 유출사건 이후 약 1년 만에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했다.

권수현: 사과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유출사건이 알려진 이후 여성연합은 피해자에게 사과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고, 따라서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다. 유출사건을 계기로 혁신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혁신안 발표에 앞서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는 데 모든 혁신위원들이 동의했다. 또한 유출사건이 여연 소속 단체들의 활동에도 타격을 입혔기 때문에 지부여성연합과 회원단체들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것이 필요했다. 혁신안 발표와 함께 공식 사과를 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권김현영: 피해자가 일상복귀를 했지만 지금도 2차 가해는 지속되고 있다. 여성연합이 이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 지원 활동을 하려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5개월간 18명의 혁신위원의 의견을 모으고 회원‧지역단체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과정은 어땠나.

권김현영: 쉽지 않았지만 모두 정말 열심히 했다. 혁신위원이 모인 11번의 전체회의가 열렸고 주제별 3개의 소위원회가 따로 열렸다. 9차 회의 때는 오전 11시에 시작해 새벽 2시까지 15시간 회의를 할 정도였다. 전체회의에는 여성연합 지부 및 회원단체 활동가들과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1~3차 회의는 유출사건 파악에 대한 회의로 진행했고, 5차부터 본격적으로 혁신안 논의를 시작했다. 사무처가 회원단체와 지역단체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이를 전체회의에서 공유했다. 혁신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목소리도 혁신안에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에는 여성연합에 대한 쓴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비판 끝에는 늘 ‘그래서 여성연합이 더 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덧붙었다. 전국 활동가들의 기대와 질책 섞인 의견이 혁신위 논의 과정에 불이 붙는 계기였다. 서로의 열정은 큰 격려가 됐다. 혁신위원들도 ‘우리가 잘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 이런 상호능동성이 조직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

권수현: 혁신안을 만드는 과정은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새로운 외부위원의 열정적인 참여가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할을 해줬다. 회의는 점잖게 이뤄지지만은 않았다. 서로 화를 내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다.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도 ‘그만 두겠다’고 내던지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의견이 모아졌다. 구글 독스에서 밤낮없이 의견을 나눴다. 공유 문서에 새 의견이 올라오면 순식간에 수십 개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위원들의 나이, 경력에 차이가 있었지만 혁신위 안에서는 모두 평등했다. 어떤 의견이라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발표된 혁신안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거다. 하지만 혁신위 과정 자체가 혁신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지난 5개월간 경험한 경이로움이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전달되면 좋겠다.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최예리 인턴기자
권김현영·권수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장 ⓒ최예리 인턴기자

-현행 3인 공동대표 체제 대신 13인 공동대표단 체제를 제시했다. 의사결정이 더디진 않을까.

권김현영: 13인 공동대표단은 지역대표 8명, 회원단체 대표 3명, 상임대표 2명으로 구성된다. 지역과 의제를 포괄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본다. 앞으로 3~5년간 조직활동에 집중하고 조율해나가면 새로운 공동대표 체제도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권수현: 현행 여연 이사회는 지부와 회원단체 대표 34명과 상임대표 1명, 총 35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고, 대표들 간 정보격차도 크고, 여연 구성원으로서 갖는 소속감도 균질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여연 소속 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13인 공동대표단을 만든 것은 이들이 여연 대표로서의 책임감을 더 강하게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기존에 1명의 상임대표와 1~2명의 공동대표로 구성된 대표들이 갖고 있던 의사결정과 정보의 독점을 분산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대표가 2~3명일 때와 비교하면, 의사결정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연합 출신의 정치권 진출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최근 대선캠프에 합류하는 여성연합 출신들도 보이는데.

권수현: 혁신안에 ‘정치 네트워킹 원칙’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중요한 여성운동의 방법이고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단체 활동가의 정치 진입은 개인 혼자만의 결정으로 이뤄진 적이 많았고, 개인의 권력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성단체 활동가의 정치진입은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공동자산을 갖고 진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에 진입하고자 하는 여성단체 활동가는 여성단체의 경험과 자산을 성평등 정치와 민주주의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강한 책무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책무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치 진입 이전에 여성단체 내부에서 왜 정치 진입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할 것이며, 정치 진입이 이뤄진 후에는 상호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등에 대한 원칙이 마련되고 공유돼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없었기 때문에 ‘유출사건’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이 마련된다면,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정치에 진입한 활동가들 간에 선순환적인 견제와 협력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권김현영: 정치 네트워킹 원칙을 마련하면 여성단체 활동 경험을 안고 정치에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단체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식의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의 기대는.

권김현영: 혁신위 과정 자체가 혁신의 시작이었다. 혁신안은 혁신위원회가 낸 결과 중 하나이고, 그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혁신의 마음들이 모이는 경험을 했다. 혁신위 과정이 혁신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혁신안을 만들며 회의 운영 방식과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배웠다는 말을 많이 나눴다. 기간을 정해놓고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모든 위원이 자신의 역량을 투입해 회의에 참여했고 이 과정에서 역량이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혁신위에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의미 있었다. 혁신위 논의 방식을 조직에 도입하겠다는 지역 대표들도 있다. 이러한 상호능동성의 경험이 이후로도 지속되면 여성연합운동이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권수현: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깨달음을 얻고 따뜻함을 느끼는 즐거운 과정이었다. 그리고 여연 회원단체라는 소속감도 처음 느껴봤다. 제가 혁신위 과정에서 느꼈던 깨달음, 따뜻함, 즐거움, 소속감 등을 이후 혁신위 실행 과정에서 다른 지역여성연합과 회원단체 활동가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두 달간 진행되는 지역 간담회가 그런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혁신위 활동은 끝났지만 여연의 혁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안] 6대 혁신 방향‧10대 과제 제시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회는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당시 피해자 지원 관련 정보가 유출된 것에 대해 ‘김영순 여성연합 대표-남인순 국회의원(여성연합 전 대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보 유출 사건’(이하 유출사건)으로 명명하고 6개 방향과 10개의 과제를 담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여성연합 상임대표의 ‘유출사건’으로 인해 지난 1월 여성연합 제35회 총회에서 구성됐다. 여성연합 조직 내‧외부 위원 18명으로 구성된 혁신위는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조직문화와 조직구조, 운동방향과 방법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혁신위는 박 전 시장 피소 사실 유출과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여성연합 혁신의 방향을 △조직하고 연대하는 여성연합 △연결하고 확산하는 여성연합 △공유하고 개방하는 여성연합 △저항하고 도전하는 여성연합 △시대변화를 읽고 대비하는 여성연합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여성연합으로 정했다.

10대 혁신 과제는 △여성운동 이론과 방법론의 혁신:의제/운동 전략본부 설치 △정치세력화 운동의 혁신: 여성정치세력화 전략본부 설치 △여성운동가의 책무성 강화: 정치 네트워킹 원칙의 제안 △공유지를 만드는 운동: ‘페미니스트 정치 회의’ 운영과 젠더데이터 센터 설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운동: 활동가 교육 및 워크숍 등 활성화 △대표 체제의 혁신: 지역과 의제를 포괄하는 대표단 확대 구성 △의사결정 구조의 혁신: 이사회 개편, 전체대표자회의 신설 △소통구조의 혁신: 전체활동가회의 신설, △활동가 중심 조직으로의 혁신: 연차별·세대별 활동가 모임 활성화 △혁신 가능한 조직으로의 변화: 사무처의 변화 및 혁신실행위원회 구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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