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treeappl@hanmail.net

@b9-1.jpg

지하철역 혹은 커다란 건물이나 아파트 입구에 계단과 노약자·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나란히 있으면, 나는 가끔 일부러 경사로 쪽을 택해 걸어본다. 물론 가파르게 만들어져 이름만 경사로인 경우도 심심찮게 만나기는 한다. 계단을 죽 잡아당겨 늘여놓은 것 같은 경사로로 걸으면 길이가 길어진 대신 다리가 덜 아프고 편안하다. 계단만 있을 때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다닐 수 없고, 노약자는 아주 힘들게 오르내려야 한다. 경사로가 있으면 장애인과 노약자는 물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편안하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의 보행로를 걸을 때도 늘 경험하는 일이다. 처음 이사온 7, 8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22평과 25평의 아파트가 모여 있는 단지답게 어린 아이들과 갓난아기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유모차가 지나갈 때 보행로와 보행로 사이의 끊어진 턱이 늘 문제였다.

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임대 아파트에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많아서 우리 아파트 단지 안으로 볼일을 보러 많이들 오는데, 턱이 있는 보행로를 피해 자동차 사이로 지나다니는 것을 볼 때면 혹시 부딪치기라도 할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나만 그런 불편을 느끼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 4년 전이었을까. 관리 사무소에서 보행로의 모서리 턱을 없애고 유모차나 휠체어가 편하게 지날 수 있는 짧은 경사로를 만들어 덧대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했다. 그러고 나니 각진 턱이 없어지면서 땅바닥에서 비스듬하게 이어진 보행로 모서리는, 건강하고 튼튼한 다리를 가진 내가 걷기에도 아주 편안하게 변했다.보행로의 모서리 턱을 없애고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니기 쉽게 만든다고 해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불편해지지 않는 것처럼, 약자가 편안한 세상은 약자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편안한 세상이며, 그들이 나중에 약자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약자에 대한 배려는 결코 다른 누군가의 편리함과 이익에서 일정 부분을 빼앗거나 덜어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혹시라도 내가 가진 것에서 내놓으라고 할까 봐 늘 주춤거린다.

실버 취업 박람회에 몰려든 어르신들의 열기가 여기 저기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던 지난 가을,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심하면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구해 난린데, 노인들의 일자리까지…” 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 어르신들의 강한 취업 욕구까지도 영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냉랭함을 향해 묻고 싶다.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어르신들이 일하겠다고 나서신 것인가를. 아무리 2004년 정부 예산안에 '노인 일자리 2만 개 개발'과 '5천 명 취업교육 실시'가 들어 있다 해도, 이 일자리와 취업교육은 엄연히 청년 취업과는 분리된 것인데 여기서도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거나 덜어서 나눠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그래서 차별을 받거나 아예 영향력의 행사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노년을 위한 배려는 결코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이 더불어 편해질 수도 있으며, 머지않아 내가 걸어가게 될 노년의 길을 편안하고 탄탄하게 닦아놓는 일이다. 해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똑같이 나눠 가지는 한 살이 우리 각자 안에 모이고 쌓여 우리 모두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노년에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