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20주년 맞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정 이끌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6월민주상’ 대상 선정

지난 2018년 8월 2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중구 시청역 승강장에서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 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지난 2018년 8월 2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중구 시청역 승강장에서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하철 타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2001년 설 연휴 전날이던 1월22일. 전남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온 70대 장애인 부부가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를 타고 지상 역사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리프트를 지탱하던 1㎝의 쇠줄이 끊어졌고, 그 순간 부부는 7m 아래로 추락했다. 황망한 죽음이었다. 이 ‘오이도역 추락 참사’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본격화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2007년 출범, 이하 전장연)’의 전신인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시작도 이 때다.

“누구라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숱한 리프트 추락 사고를 경험했던 장애인들은 정부를 향해 누구든 안전하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선로로 내려가 누웠고 버스에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어 시위를 벌였다. 활동가들과 회원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였다. 그래야만 세상이 관심을 보인 탓이다. 이들의 투쟁으로 2005년 이동권이 명시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시행될 수 있었다. 2009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휠체어 리프트를 “장애인에게 제공되어야 할 정당한 편의시설로 볼 수 없다”며 정부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01년 13.74%에 불과하던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2020년 91.73%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다.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과 아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더디지만 조금씩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던 투쟁의 사진을 모은 ‘장애인이동권 투쟁 20주년 사진전, 버스를 타자’를 열었다. 전시회는 5월25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며, 6월5~9일 국회의원회관 제2로비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던 투쟁의 사진을 모은 ‘장애인이동권 투쟁 20주년 사진전, 버스를 타자’를 열었다. 전시회는 5월25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리며, 6월5~9일 국회의원회관 제2로비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년째 ‘쇠사슬’ 감고 ‘점거’해야 하는 이들

하지만 “안전하게 이동하고 싶다”는 당연한 요구는 20년이 흐른 지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인 18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전장연 회원 60여명이 계단식 버스로 운행되는 시내버스들을 막아서며 이동권과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계단식 버스는 장애인 휠체어 탑승이 불가능하다. 휠체어를 탄 이들은 버스를 막고 “장애인에게도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쳤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2017년 22.4%, 2018년 23.4%, 2019년 26.5%로 더디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에서 저상버스 도입 목표로 정한 2021년 42%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인권위가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수단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장애인 응답자의 48%가 ‘저상버스 이용(승차) 거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승차거부 이유는 ‘버스 경사판 작동법을 기사가 모르거나 작동 불량’(69.1%)이 가장 많았고, ‘다른 승객의 불만’(14.5%)이 ‘기사의 다음 차량 이용 권유’(39.1%), ‘승객이 많거나 만차’(38.2%), ‘무정차 통과나 접근 전 버스 출발’(34.5%)라는 답이 많았다. 결국 승차거부를 당한 뒤 외출을 포기(13.6%)한 이들도 있었다.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현실 속에서 전장연 활동가들과 회원들은 또 다시 거리로 나가 휠체어를 쇠사슬로 감고 도로를 ‘점거’할 수밖에 없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우리 사회 보편적 민주주의 발전 이끌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올해 제4회 ‘6월민주상’ 수상단체로 전장연을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6월민주상은 6·10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7년 만들어진 상으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사례를 발굴해 시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하는 엄마들’(2020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2019년, ‘아시아인권문화연대’(2017년)가 상을 받았다.

사업회는 전장연에 대해 “탈시설, 노동권, 이동권을 주요 의제로 삼고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며 “최근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집단시설의 위험성을 알리는 동시에 감염병예방법 개정 발의,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발의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올해 활동 20주년을 맞은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서 시작해 보편적 장애인의 권리 증진으로 그 활동영역을 확대해 왔다. 190여개 장애인·시민사회·노동·인권·문화예술단체로 구성된 상설 연대체로서 쉼 없이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6월민주상 심사위원회는 대상 선정 배경에 대해 “전장연은 척박한 우리 사회 장애인 인권보호 상황에 대응하여 거침없고 치열한 투쟁을 통해 장애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드러나는 존재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사각지대의 약자들이 복지혜택의 대상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권리영역을 확장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우리 사회 보편적 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 왔기에 수상자로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6월민주당 본상에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대학교육연구소’ 두 단체가 함께 선정됐다. 이번 수상으로 전장연에는 총 2000만원의 상금이, 본상 수상자에는 각각 1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오는 6월 1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의왕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는 제한된 인원만 참석하며, 유튜브를 통해 현장에서 생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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