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생 김두리] “시아버지 돌아가셨지, 또 남편은 일본군 영장이…”
[29년생 김두리] “시아버지 돌아가셨지, 또 남편은 일본군 영장이…”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7.09 11:17
  • 수정 2021-07-0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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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9화. 징병을 피하려 산골로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

일본어 사용 장려 포스터.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국어, 곧 일본어 생활을 실행하자고 적혀 있다. 당시 일본어 사용과 보급은 징병제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일본어 사용 장려 포스터.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국어, 곧 일본어 생활을 실행하자고 적혀 있다. 당시 일본어 사용과 보급은 징병제와도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최규화

시집온 지 두 해 만에 할아버지[시아버지] 돌아가셨지, 또 느그 할아버지[남편] 군인[강제징병] 영장이 나왔는 거야. 그때는 영장이 나와도 사람만 앤 비면(보이면) 몬 찾아서 앤 데리고 갔다니까. 그래가지고 군인 피한다꼬 사던(살던) 살림도 그양 내삐고(내버리고), 우선에 살 거나 쪼매 가지고 어디 꼴짝(산골)에 드가서(들어가서) 숨어서 앤 살었나.

우예(어떻게) 됐노 하면, 그 전에 경주에 현곡[경북 경주시 현곡면] 거 사다가 덕정[경북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 글로(그리로) 이사를 먼저 왔다. 느그 증조부님[시아버지] 삼형제 중에 덕정 거 둘이나 살고 있으이. 거 사는데, 그때 삼촌[시삼촌]이 징용 영장이 나왔는 거야. 근데 이 어른이 마 달러가뿌고(달아나버리고) 없는 거야.

달러가뿌고 없어놨디, 또 느그 할배를 델고 갈라 하는 거야. 그때 느그 할배가 나무하러 가뿌고 없었어. 오새(요새) 같으면 집에 오지 마라꼬 전화로 했으면 안 오지. 그랄 낀데 안 올 수가 없잖아. 나무를 해서 지고 오니까, 면서기하고 동장하고, 그때는 구장이라 했다. 구장하고 면서기하고 와서, 집 앞에 바랐고(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나무 처박아놓고 옷 갈아입고 간다꼬 그랬지. 그래놓고 느그 할배한테 마 뒷 머시로[뒷문으로] 모르게 나가라 했잖아. 내가 좀 꾀가 많은 택(셈)이지. 뒷산으로 올라가 뿌래라(버려라) 해놓으니까, 느그 할배 옷도 갈아입지도 안 하고 그양 올라갔다.

[집에서] 안 나온다고 구장이 와서 찾아보디만 없어놨디, 어데로 갔다꼬 찾고 생난리를 지기데(치데). 그래가지고 시어머니캉(랑) 나캉 실컷 다았지(당했지, 혼이 났지).

“어데로 갔는지 모르나!”

그 사람들 내(계속) 있다가 해 빠져서(져서) 어덥까(어두울 때) 갔더라꼬. 저거도 배도 고프고 해놓이 가뿠다. 느그 할배는 그래 산에 숨어 있다가 저녁에 내려왔데. 내르와가 옷 갈아입고 밤에 느그 진외가(아버지의 외가, 할머니에겐 친정)로 갔잖아. 밤에 가서 숨어 있었다.

축징병제실시.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조선의 유학자 모임인 유림에서 일본군으로 전쟁동원되어 가는 것을 미화하는 시를 수록한 책이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e뮤지엄(국립전주박물관)
축징병제실시. 일제강점기인 1943년에 조선의 유학자 모임인 유림에서 일본군으로 전쟁동원되어 가는 것을 미화하는 시를 수록한 책이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e뮤지엄(국립전주박물관)

그래 숨어 있다가, 할 수 없이 꼴째이(산골)로 들어갔다. 다시 여(여기)는 살 수 없으니까. 느그 할아버지하고 작은할배[시동생]하고 증조모님[시어머니]하고 내하고 네 식구가. 면서기들이 와서 살피고 도다가(돌아가) 저녁답(저녁때) 되면 가뿌거든. 아쉬븐(아쉬운) 거 있으면 밤으로 모르게 집에 내르가서 아쉬운 거 한 가지씩 갖고 오고, 그래 살았다니까.

양식도 어드메 친한 사람들 연줄 연줄 해가지고 어더븐(어두운) 밤에 가서 곡석(곡식) 한 말씩 팔아서[사서] 가와서(가져와서) 묵고, 산에 가 나물 뜯어서 묵고, 고생했는 거 말할 수도 없다. 방을 쪼매는(조그마한) 거 하나 얻어서 네 식구가 한테(한데) 자고.

거서(거기서) 밑에 누가 밭을 쪼매난 거 하나 줄 테니까 집을 지으라 하데. 느그 할배하고 작은할배하고 증조모님하고 서이드르(셋이서) 흘로(흙을) 이어 담을 쳐서 집을 지었다. 나는 내들(내내) 산으로 나물 해오고. 아침에 해와서 삶어서 낮에 묵고, 또 점심 묵고 가서 나물 뜯어와서 저역(저녁)에 묵고, 이따 아직(아침)에 또 묵고. 내들(내내) 산에 나물 뜯으러 댕겼다.

그래 꼴짝에 집을 만드는데, 그때는 난리판이고 니 것 내 것도 없고 하니까 두 형제가 댕기며 나무(남의) 산에 가가지고 모르게 남구(나무)를 비다가(베어다가) 막집으로 지었어. 그래도 방 두나(둘) 부엌 하나 삼칸지기(삼간 집)로 만들었는 거야.

그럴 때 느그 큰아버지[첫째 아들]가 섰는 거야. [작가 : 산에 도망가 있을 때 임신하신 거예요?] 그래. 본대 우리 집에 왔다 갔다 했잖아. 꼴짝에 숨어 있다가 밤에는 한번씩 내려오지. 잠도 자고 갈 때도 있고.

가뜩이나 입덧해서 못 먹는데다가 아무것도 물(먹을) 것도 없으니까 내가 힘이 있을 택(턱)이 없지. 죽을 판 살 판 산으로 댕기면서 나물로 뜯어가지고 묵고, 참꽃[먹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를 개꽃에 상대해 이르는 말] 따서 묵고, 송기[소나무의 속껍질] 막대이(막대기) 끊어서 꿀 빨어묵고, 껍디(껍데기) 빼끼(벗겨) 묵고. 그래 세월로 보냈다.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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