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성적 고정관념을 뒤집는 말로 보수적인 남성들을 놀릴 때가 있다. 예컨대 여자가 남자에게 “넌 남자가 찌개 하나 제대로 못 끓이냐? 그래 가지고 사랑받는 남편이 될 수 있겠어?” “남자가 좀 나긋나긋한 맛이 있어야지”, “염려 마, 내가 널 보호해줄게”라고 말하면, 보수적인 남자들은 황당한 웃음을 짓는다. 이런 말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쓸 수 있는 말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재롱떠는 귀여운 남자, 사랑받는 남편이란 관념이 늘어나서 이런 말들은 그다지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지금도 만약 여자선배가 빤질거리는 남자후배에게 농담스럽게 야단치는 말로 “너 자꾸 그렇게 못되게 굴면 확 뽀뽀해 버린다”라고 말한다면 좀 충격을 받을 것이다. 혹은 우는 여자애에게 “여자가 씩씩하지 못하게 울면 쓰나, 뚝!” 하고 달랜다면 그것도 꽤 낯선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자에게 쓸 수 있는 말과 남자에게 쓸 수 있는 말을 명확히 구분해놓고 있다.

~b2-3.jpg

노래도 그렇게 구분될까?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를 남자가 부른다면,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를 여자 목소리로 듣는다면 꽤나 낯설 것이다. 양희은이 부르는 노래의 상당수는, 전통적으로 여자 목소리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노래들이다. 양희은 초기의 최고 인기곡인 <아침이슬>만 해도 그렇다.

(상략)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양희은 <아침이슬>(1971, 김민기 작사·작곡)

보수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이렇게 자신의 앞에 놓인 인생에 대한 묵직한 고뇌는 다분히 남성적인 것이다. 플라톤 시대에는, '여자와 노예에게 영혼이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아는 선배는, 대학시험을 볼 때 여자가 수학문제를 푸는 것을 처음 보았고, 그것이 그렇게도 낯설어 보였단다. 여자는 논리적인 사유, 묵직한 고뇌 같은 것을 할 능력이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그런데 심지어 '묘지'가 있는 '광야', 즉 죽음과 고난이 놓여 있는 험한 길로 나아가겠다고? 감히 여자가? 게다가 말투조차 '…일지라' '…노라'라니! 이것은 선지자나 독립투사가 쓸 수 있는 말투 아닌가. 양희은은 그런 여가수다. 그때까지 여자가수에게 맡길 수 없었던 남성적인 영역의 감수성과 내용을 여성의 목소리로 성공시킨 가수인 것이다. 여자가수가 부드러운 사랑 노래, 구슬픈 이별 노래를 부르지 않고, 역사나 인생을 씩씩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매우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씩씩하고 거침없이 대하는 당당한 여자의 모습을 처음 보여준 가수, 그의 노래에서 이런 '남성적' 목소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창문을 열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 /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더 느껴 보자 (중략) 아하, 나는 살겠네 태양만 비춘다면 (하략)

양희은 <행복의 나라로>(한대수 작사·작곡)

(상략) 가자 천릿길 굽이굽이 쳐 가자 /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양희은 <천리길>(김민기 작사·작곡)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양희은 <늙은 군인의 노래>(김민기 작사·작곡)

따지고 보자면, 양희은의 시대는 이미자가 한창 활동하고 있던 시대다. 그러나 이미자와 양희은은 전혀 동시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다. 이미자는 바지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가수라면, 양희은은 타이트스커트나 꽃무늬 스커트가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가수, 더벅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환하게 웃는다. 당시 양희은의 인기는, 이미자식의 한스러운 여인상을 거부하고 싶은 당시의 청년문화 세대들의 반문화적 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양희은은 여자의 목소리가 어떤 느낌, 어떤 방식으로 사회나 역사라는 소재를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떤 질감으로 당당하고 힘차게 외치면 되는지를 구체적인 느낌으로 가르쳐주었다. 양희은이 없었다면? 글쎄, 아마 우리는 청년문화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박인희 같은, 지적(知的)이지만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만을 키워왔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양희은이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