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스러운 사원 성(性)스러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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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함, 품위, 아름다움. 전세계의 찬사를 받는 타지마할 사원.<사진·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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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조각들은 신들의 성애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진·김동주>▶

인도를 여행하면 양극을 치닫는 인도의 두 얼굴에 혼동이 가기도 합니다. 뒤떨어진 사회 인프라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이러한 물질세계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풍족한 영적인 세계 또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거리에서 손 벌리는 벌거벗은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강가에서 백시시(동냥)를 구하는 걸인들의 모습에서도 비굴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곡식자루를 들고 거리에 늘어선 걸인들한테 양식을 나누어주는 가진 자의 모습도 거만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카주라호는 바라나시에서 비행기로 약 40분 걸리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인구도 불과 몇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을에 제트여객기가 매일 운행되는 이유는 카주라호의 독특한 힌두교 사원들 때문입니다.

조그만 마을에 몰려드는 관광객

10세기 힌두 왕국인 찬델라의 도읍지였던 카주라호의 힌두 사원은 서쪽 군과 동쪽 군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성기에는 수많은 사원이 있었다고 하나 그후 이슬람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많이 파괴되어 지금은 22개가 남아 있습니다. 힌두교는 다신교입니다. 대표적인 신만 해도 시바, 비슈누, 브라만 등이 있으며 가네쉬(코끼리), 하누만(원숭이) 등의 모습을 한 다양한 신상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들 신들은 그들끼리 결혼도 하여 자녀신을 두고 있으며 화신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힌두교에서는 부처님도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신들이 인간이나 동물의 형상을 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신들도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꾸려나갔나 봅니다. 카주라호에 있는 힌두교들은 신들의 성애모습이 아주 리얼하게 조각된 미투나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조그만 마을에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은 저부터가 인도 전 지역에 널려진 힌두교 사원 자체보다는 이런 별난 조각을 보려고 오는 것입니다.

숙소문 밖을 나서서부터 따라온 동네아이는 유창한 영어로 Erotic Sculpture를 연발합니다. 굳이 누구의 안내를 받지 않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애모습을 그린 조각들. oral sex, anal sex, animal sex. 지금의 단어로 표현하기조차 민망한 조각들을 그 아이들은 조막 돌을 던져 가리켜 줍니다. Erotic이란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나이일 것 같은데도 말입니다.

성(聖)스러워야 할 종교사원에 성(性)스러운 조각이라니…. 바라나시에서 같은 비행기로 도착한 영국에서 온 단체관광객을 한 발짝 물러서서 따라다니며 안내인의 설명을 귀동냥했지만 쉽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책을 한 권 구입하여 밤새 사전을 찾아가며 책을 뒤져보았지만, 우리말로 된 책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내용일진데 큰 도움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 눈길 끄는 에로틱한 조각들

그 중 쉽게 이해되는 내용은 당시 브라만 계급의 소년들한테 일종의 성교육용이라는 얘기와 벼락을 막기 위해 비의 신 인드라를 달래는 조각상이라는 얘기, 당시에는 섹스 자체가 일상생활의 하나였을 것이라는 얘기 정도였습니다.

아마 카주라호의 미투나상들이 지금의 포르노그래피로 여겨진다면 찬델라 왕국의 사람들은 무척이나 억울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미 인도사회에서는 기원전 6세기 전부터 카마수트라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성생활의 지침서로 등장했는데 어차피 천년 전 사람들이 살아온 얘기를 지금에 와서 일일이 윤리적인 기준을 따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으며, 찬드라 왕국 사람들의 섹스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니까요.

타지마할에 숨어 있는 슬픈 사연

카주라호를 떠나 델리로 돌아가는 길에 타지마할을 찾아 아그라에 들렀습니다. 타지마할은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타지마할의 이면에 지닌 애절한 사연을 되새기며 새로 시작한 홈페이지에 사용할 장면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인도는 힌두교가 지배하는 나라이지만 처음으로 인도를 찾는 사람들은 힌두교에 관련된 것보다는 무굴 제국 시절의 찬란한 이슬람 문화를 먼저 만나게 됩니다.

힌두교에는 하나의 절대신이 아닌 무수한 신들이 존재해서인지 다른 종교에 대해 포용력이 있다고 하지만, 막상 힌두사원에는 이교도들의 출입은 제한되는 반면, 이슬람 사원은 그들의 예배시간만 아니면 전면 개방이 되어 관광객들은 자연히 이슬람 사원 쪽을 쉽게 찾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지마할을 건립한 무굴제국 시절의 황제 사자한은 유명한 건축광이었다고 합니다. 델리에 세워진 자마마스지드, 레디포트 등 모두 그의 전성기에 세워진 불멸의 건축물입니다. 타지마할은 웅장하고 품위 있고 갖은 찬사를 붙여도 모자라지만 이 모든 찬사를 합하여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름다움'입니다. 미나렛(첨탑) 위로 떠오른 보름달 빛에 비쳐진 타지마할의 대리석 돔의 모양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하늘에서 별을 타고 공주가 나타날 것만 같은 한 편의 동화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뒤에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사자한은 사랑하는 그의 아내 뭄타즈마할과 17년의 결혼생활을 통해 14번째 아이를 가졌을 정도로 왕비를 아끼고 사랑했으나 불행하게도 왕비는 마지막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왕비를 잃은 사자한은 그녀의 무덤을 아름다운 궁전과 같이 지어 마지막 애정을 표시하려 했답니다. 무려 22년에 걸쳐 대역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왕비의 무덤에 그 많은 국력을 쏟은 탓인지 국력은 기울어져만 가고 결국은 사자한은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쫓겨나서 타지마할이 바라다 보이는 야무나강 건너편에 갇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자한 역시 그의 아버지를 쫓아내고 황제에 올랐다고 하니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자식한테 그대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타지마할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여전히 길가에 노숙하는 사람들과 걸인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지만, 오늘만큼은 인도의 두 얼굴 중에서 한 가지만 간직하고 싶어 릭샤(인력거)를 타고 눈을 감고 돌아왔습니다.

http://www.drkims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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