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녹아난 삶의 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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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예술평론가

고달픈 여자 무시하자고?

그러나 삶의 진실인 것을!

<여성신문> 독자분들에게 이미자가 어떤 이미지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적어도 더 이상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짓눌린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믿음만 갖춰도, 이미자의 노래에 그저 감동의 박수를 보낼 수는 없는 심사가 된다.

이미자의 노래 속 여인은 늘, 한과 눈물의 여자, 숙명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속으로만 피눈물 흘리면서 참아내는 여자, 남자의 뜻에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오로지 순종적으로 살아가며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하늘 같은 남편과 집안의 사랑과 신망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여자, 남자 앞에서 한번도 큰소리 내지 못하고 남자가 소리 한 번 지르면 항변도 못한 채 눈물부터 흘리는 여자, 한마디로 지금 한국의 중노년 남자들이 매우 좋아하는(답답해하면서도 결국은 편안해하는) 여성상이다.

이미자 노래 속의 여성의 모습이 다 이러하지만, 나는 그래도 이 노래가 그런 모습을 가장 요약적이고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968년 <여자의 일생>이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 하고 /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이미자 <여자의 일생>(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 노래는 제목부터 무언가 답답하고 비애스러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을 걸어놓고 뭐 신나고 즐거운 얘기가 나올 수 있겠는가.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도 신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자연주의적인 냉철함이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로 바꿔놓으면 이 제목은 완전히 신파적 감수성으로 읽힌다.

이 노래와 같은 해에, 신상옥 감독은 모파상의 소설을 번안한 <여자의 일생>을 발표했고, 남궁원의 바람기에 울고 짜고 하는 최은희의 신파적 비애감을 담았다.

이렇게 한국형 신파 감수성으로 바꿔놓고 나면,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은 “으이그, 여자인 게 죄다”라는 한탄으로 들린다.

상황이 고통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이렇게 무력하고 비주체적인 주인공으로서는 상황을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 가능성 제로다.

어차피 세상은 자신의 의지로 바뀌는 게 아니라는 듯, 아니 의지 같은 말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 '여자로 태어난 게 죄'인 이 여자는 그저 그 운명을 참고 견디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래서 이런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신경질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슴 답답함이, 이 노래가 지닌 나름대로의 진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 수많은 여자들이 이렇게 살아갔다. 그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특히 이런 느낌을 자아내는 트로트 가요, 이미자의 노래들을 비교해봐도, 이 노래는 참 독특하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트로트 가요들도 주로 '임'을 향한 불변적 사랑과 그리움과 야속함과 서러움으로 가득 차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그와는 좀 다르다.

이 노래에서 슬픔의 원인은 꼭 '임' 때문만이 아니며, 해결도 '임의 귀환' 혹은 '사랑의 회복'이 아니다. 이 노래 어디에도 '임이여 돌아오세요', '당신은 어찌하여 그리합니까' 같은 애원이 없다.

대중가요의 세계에서는 매우 돌출적이지만, 우리의 삶을 비춰보자면 훨씬 현실에 가깝다. 남자가 사랑만 해주면 여자의 불행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 노래의 가사처럼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들도 남편 하나 바라보고 산 게 아니라 아이들 하나 보고 산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 자식들조차 말썽피워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지 않던가. 세상은 여자들에게 정말 칼바람처럼 매섭지 않던가.

가사 그대로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 노래는 이런 삶의 비애감의 실체를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트로트라고 비웃고 무시하며 지나갈 수가 없다. 희망도 없어 결코 건강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노래에 녹아 있는 삶의 진실성, 고통의 절절함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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