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정치, 리더십은 우리의 통념으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정치는 국가 중대사를 논하는 곳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소인 취급을 받던 여성은 관계없는 분야이고 더더군다나 남을 이끄는 리더를 위한 리더십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다스리는 대상이거나 이끌림을 당하는 대상이라면 모를까.

유난히 리더가 많은 곳이 정치권이다. 대부분 정치권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역할을 다하고 싶어하고 스스로 지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정치에서 리더라고 하면 대부분 영웅을 떠올렸다. 나폴레옹이나 한니발 등 전쟁에서 영웅적인 전공을 세운 이들이나 드골같이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들이 전형적인 정치지도자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을 보아도(성공한 정치인을 떠올리자니 좀 막막하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은 근엄하고, 범상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가진다. 물론 여기에 적당한 권모술수까지 겸비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 정치인은 전문성을 갖고 실무를 담당하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남들 앞에 우뚝 서 있는 명예직으로서 의미가 더욱 컸다. 그리고 원칙보다는 상황논리에 능해야 하고 적당한 부정부패는 눈감을 줄 알아야 하고, 지도자가 되면 아랫사람들을 명령으로 억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자금까지 대주며 책임져야 하는 리더의 모습, 바로 조직폭력배 보스와 유사한 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유능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정치인의 모습이 한국정치를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무능한 분야로 남게 만든 이유이며, 정치가 여성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남성전용 분야가 된 이유다. 따라서 그 동안 극소수로 정치권에 끼여든 여성들도 대부분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드센 '남성화된 여성'들이라는 것이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오면서 민주적 리더십이 새로운 과제로서 떠오르고 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여성들의 자질과 리더십을 어떻게 연계시켜야 할 것인가가 주요 이슈가 되었으며, 정치분야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여성의 권익신장뿐 아니라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정치적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같이 가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전까지의 리더십에서 앞에 우뚝 서서 남을 이끄는 영웅의 모습을 그렸다면, 21세기의 지도자는 남들과 같이 섞여서 전체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명령이나 억압이 지도자가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원활한 의사소통이 주요한 지도방법으로 등장한다. 특히 정치는 의사소통의 예술이다. 국민들의 대표로 뽑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를 표출하며, 정책화하거나 법으로 만들어서 집행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주된 임무이다. 그러자니 국민 또는 자신의 지역구민들과 얼마나 의사소통이 잘 되는가가 민주주의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인의 자질로서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정치인들이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이유도 심부름꾼이라는 정신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 때문이며, 소수로 참여하는 여성정치인들이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능력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정치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원칙을 얼마나 지키느냐이다. 보통 정치지도자라고 하면 원칙보다는 상황논리에 능숙하고 적당히 권모술수를 부릴 줄 알아야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인들의 특성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부정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장 폐쇄적인 부문으로 남게 만들었다. 일이 모두 끝난 후의 룸살롱이나 사우나에서 끼리끼리 모여 앉아 주요한 결정을 하는 구조에서 어떻게 새로운 정치가 태동하고 정치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이제는 원칙을 가지고 공개된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리더들이 필요한 때다.

이 외에도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은 창의성, 적극성 등 수없이 많다. 그리고 물론 여성들이 스스로 리더임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여성 리더십을 키우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빗장을 걸어 잠그는 가부장적인 전통적 리더의 통념이 깨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참여도 정치발전도 어렵다. 이제 여성들이 정치의 장에 참여해 능력을 보여주는 일은 여성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구현하여 현재 수렁에 빠져 있는 정치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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