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편의상 나의 가족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혼자 사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듣곤 한다.

내가 “가족과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셈이죠”라고 대답하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나는 나의 대답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이 대안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것은 3년전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부터다. 이 일은 아빠와 오빠와 나에게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엄마가 계시지 않고, 집에는 남자들뿐이니 너의 어깨가 무겁겠다느니, 아빠와 오빠를 잘 챙겨주라느니 하는 걱정을 나보다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이기적이고, 그 이기심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가족이다.

일단, 집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각자의 작업공간과 생활공간을 확보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은 주방 겸 식당과 화장실로 제한했다. 그러다보니 가사일도 자연스레 나뉘게 되었다.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챙겨먹게 되었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자기 옷은 자기가 빨고 정리한다. 작년 여름,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아빠에게 수도 없이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지 걱정하다가 (아빠에게 전화가 오는 일은 매우 드물다) 쉬는 시간에 전화를 했다. 아빠는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로, 아빠의 흰 속옷과 나의 보라색 티셔츠가 섞여서 흰 속옷이 모두 분홍색이 됐다고 화를 내셨다. 그 뿐이 아니다. 내 방 형광등이 며칠째 껌뻑껌뻑하기에 “아빠, 형광등 갈 때가 된 거 같으니 들어오는 길에 사다주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밤샘작업을 하고 집에 들어와 자고 일어나 보니 침대 머리맡에 작은 메모와 만원짜리 한 장이 있었다. “이제 너도 형광등쯤은 갈아 끼울 줄 알아야지. 돈 줄 테니 니가 사서 갈아라!”

그리고 어느날 새벽 네 시. 집까지 데려다 준 친구(남자)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따뜻한 차라도 한잔 대접하기로 했다. 벌컥. 작업실 문이 열리고 런닝 차림의 아빠가 스윽 나타나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신 아빠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왔냐? 놀다가라” 하시며 조용히 문을 닫는다. 친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너네 아빠, 혹시 니가 남자애 데려온 게 반가우신 거 아니냐”며 나를 놀린다.

우리는 서로 생활시간대가 달라서, 여러 날 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삼일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면 핸드폰으로 가끔 안부전화가 오간다. “밥은 먹고 다니냐?” “별일 없지?” 그러곤 끊는다. 나도 집에 못 들어가면 전화는 한다. 내가 “아빠 나 오늘 학교에서~”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아빠는 무슨 이야기인지 빤하다는 말투로 “응, 그래~” 하시며 뚝 끊으신다.

서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우리 가족도 생일이나 명절에는 한 끼 식사 정도를 함께 한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알릴 의무도 없고, 보고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주로 식사를 빌미로 하여 '종합예술포럼'을 연다. 예술과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가끔은 큰소리로 논쟁하기도 하고 삐지기도 한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면 가끔은 연애상담과 정치적 논란도 일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나 비슷한 결론으로 수긍하면서 포럼을 마무리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예술가의 아지트는 오늘도 평화롭다.

노현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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