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등의 시선] 남탕의 여자 ‘때밀이’
[나일등의 시선] 남탕의 여자 ‘때밀이’
  • 나일등 사회학자
  • 승인 2021.01.02 10:12
  • 수정 2021-01-05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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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놀라는 한국 문화 중 하나가 여성 환경미화원이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국제 행사가 열릴 때 간혹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는데, 유럽과 북미 출신 기자들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이런 한국의 문화를 고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볼일을 보다가 여성 미화원을 발견하고 민망함을 느꼈다는 한 시인의 시를 읽은 기억도 난다. 한국인 중에도 이런 문화를 어색하게 여기는 사람들(미화원 당사자를 포함)이 일정 수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는 목욕탕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일본 대중목욕탕이나 온천 시설 중에는 한국처럼 ‘때밀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여탕은 물론 남탕에서도 목욕관리사는 대부분이 여성이다. 외국인, 특히 ‘때밀이 서비스’가 있는 한국에서 온 이들은 여성 직원을 발견하고 기겁을 하기 일쑤다. 나는 그런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목욕관리사가 있는 온천을 골라 안내하기도 한다.

일본 남탕 목욕관리사 대부분 여성

그런데 그런 여성 목욕관리사 중 많은 수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 출신이다. 통계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대도시일수록 한국 출신 목욕관리사가 많고, 지방일수록 일본인이 많은 듯하다. 도쿄 또는 근방의 온천에 자주 들르는 나도 한국 출신의 목욕관리사를 많이 봤다. 능숙하고 노련하게 손님을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남탕 한가운데서 어떻게 몸을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한 젊은 목욕관리사를 본 적이 있다. 목욕관리사의 시술실은 욕탕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곳은 남탕 한가운데에서 시술을 받도록 해 놓았다. 평소 같으면 여직원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민망해진 기억이 있다. 경황이 없어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한국 분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남탕의 여성 종업원은 목욕관리사만이 아니다.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이들도 여성이 많고 수시로 남탕을 들락거린다. 욕탕 온도를 점검하고 샴푸를 교체하고 사우나 매트를 갈고 바닥을 청소하는 등의 일을 한다. 한번은 한국 지인과 온천을 갔다가 알몸으로 여성 종업원과 마주친 적이 있다. 화들짝 놀란 그는 입욕하는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온천을 나서면서는 인권 침해라며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국 화장실에서 여성 미화원과 마주친 서양 기자도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13세기 생긴 일본 목욕관리사

일본에서 입욕 시설의 접객 서비스는 역사가 길다. 최초의 ‘목욕관리사’는 13세기에 생겨났다는 말도 있는데, 에도시대 초기(17세기 즈음)에 일반적으로 되었다. 유나(湯女)라고 불리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는데 기본적으로는 머리를 감겨 주거나 때를 밀어주거나 차를 내오거나 시설 관리를 했다. 그러나 점차 기생의 역할도 겸하게 되었고 이내 매춘이 성행하자 막부가 금지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유나가 금지되자 산스케(三助)라는 남성 노동자가 퍼졌다. 산스케 역시 시설 관리와 접객이 주 업무였다. 땔감을 해오고 목욕물을 덥히고 입욕객의 등을 밀어주는 등의 일을 했고 경력이 쌓이면 카운터 업무를 보기도 했다. 산스케도 유나와 마찬가지로 남탕 여탕을 가리지 않고 들락거렸다. 산스케는 최근까지도 존재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마지막 산스케가 2013년에 고령으로 은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입욕 시설에서는 여성 종업원이 남탕을 들락거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탕의 여자 때밀이’의 배경에는 수백 년에 걸친 역사·문화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한국 화장실에 놀란 서양 기자, 남탕에서 당황한 목욕관리사, 인권 침해를 주장한 지인의 예를 들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낯선 문화를 마주하고 받은 충격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 충격이라는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충격은 어차피 일시적인 것. 충격이 가신 후에는 이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받은 충격이 크다고 해서 거기에 매몰되어 큰 맥락을 보지 못하고 섣부르게 평가를 내리는 것은 큰 실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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