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차 여성노동운동가 “활동가의 삶이 좋습니다”
22년차 여성노동운동가 “활동가의 삶이 좋습니다”
  • 최현지 기자
  • 승인 2021.01.02 10:24
  • 수정 2021-01-0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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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배진경 대표 ⓒ홍수형 기자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홍수형 기자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가 ‘2020 제18회 미래의 여성 지도자상(미지상)’을 수상했다.

배 대표는 1998년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선전홍보부장을 시작으로 2007년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를 맡았고, 2019년부터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다양한 문화 기획과 조직력으로 여성노동자와 비정규, 가사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기여해 왔다. 

-미지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상은 늘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지요. 한편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제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여성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 때 여성 이슈만 다루는 교지에서 일했습니다.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성평등 사회의 당위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4년 내내 나눴습니다. 졸업 무렵 IMF에 직면하면서 여성 노동의 의미, 사회적 위기 속 취약성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여성노동자회에서 활동가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년 넘게 여성노동운동에 헌신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하나하나 소중하고 중요한 역사의 장면들이라 하나를 꼽기가 어렵습니다. IMF 위기 속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책적 성과,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을 때 앞서서 요구했던 비정규직 권리, 출산휴가 90일과 육아휴직 사회분담화 법제화, 2001년 최초의 최저임금 인상요구 집회, 가사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요구해온 시간들, 6년 투쟁 끝에 복직한 전국여성노동조합 88CC경기보조원투쟁부터 미투운동, 안희정 위력 성폭력 사건 대응, 올해 대전MBC아나운서의 채용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와 결국 이뤄낸 정규직 전환 등등. 하나하나 소중한 사건들이었죠.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런 사건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해결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 사건이란 그저 일상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인지되던 문제들에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죠. 왜 아니고 문제인지에 대한 논리를 하나하나 만들고 대안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사건화가 가능합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사건은 존재하지 않죠. 결국 운동을 만들어온 과정 자체가 가장 소중한 사건이 아닌가 싶어요."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에 원점회귀로 답한 후안무치한 판결’라는 제목으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우리는 미투운동 이후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발언했다. ⓒ여성신문 최지혜 인턴기자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여성신문 최지혜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이 여성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줄어든 일자리 대부분이 흔히 말하는 ‘여성 일자리’였습니다. IMF 등 위기 때마다 여성이 가장 먼저 해고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위기는 취약층을 먼저 공격합니다. 딛고 선 기반 자체가 불안정한 사람들이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차별 사회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매달려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당연히 가장 먼저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위협당하는데 여성노동자 중 절반이 비정규직입니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 위기는 국가와 사회가 행해왔던 돌봄이 셧다운된 상태에서 이를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고, 대면접촉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일하고 있던 여성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코로나 위기는 곧 ‘돌봄 재난’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봄 위기를 겪으며 돌봄 노동과 재생산 노동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있는데요.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돌봄은 그동안 여성이 하는 역할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돌봄은 분명한 노동, 그것도 고강도 고숙련이 필요한 노동입니다. 돌봄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돌봄의 생산물이 삶 자체이며 일상의 유지이기에 티가 안 날 뿐이죠. 멈추면 알게 되는 것이 돌봄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왔던 안온한 일상이 여성을 착취하고 희생시켜온 대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급돌봄노동은 여성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함께 하는 노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시작은 거기부터라고 봅니다. 이와 함께 저평가된 유급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과도하게 배정된 업무량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돌봄의 공공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이고요."

-2021년 여성노동자회 중점 사업은 무엇인지요. 

"코로나 위기 속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 계속될 예정이고요.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스탑’은 2021년에도 이어집니다.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20대 여성노동자 현실을 들여다보는 사업도 조사와 지역 조직화를 동시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2022년 대선과 지자체 대응을 위한 성평등 노동 추진체계와 정책 만들기 사업도 진행하고, 전국의 여성노동자회가 단단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활동들도 새롭게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년 넘게 지속가능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요.   

"언제까지 활동해야겠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 이런 목표나 계획은 없었어요. 제 좌우명이 “순간이 영원”이예요. 순간이 쌓여서 나의 과거, 오늘, 미래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지나면 잊어요. 후회나 미련도 없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20년이 훌쩍 지난 것도 잘 인식이 안 됩니다. 그냥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충실하다보니 지금까지 온 듯하네요." 

-활동가의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조언은 아니고 적극적 권유를 하고 싶네요. 활동가의 삶은 꽤 괜찮다고요. 신념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하루를 사는 것. 매일 같지 않은 하루를 내가 만들어갈 수 있었던 그 인생 저는 좋았습니다. 같이 가 보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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