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37세, 김포에서 네 명의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식물에 관한 어린이 책을 쓰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진선 출판사에서 <늘 푸른 환경일기>를 다른 두 명의 작가들과 공동으로 집필했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 여성, 환경 등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끌어 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을 기획,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훌라후프와 곤봉(서현이 학교 체육대회 때 썼던 것)을 들고는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놀고 있었다. 방학 중에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붙어 있거나 호시탐탐 텔레비전을 노려서 오늘은 아예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려 놨더니 쌍둥이들은 블록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서현(초등4년)이, 서린(초등1년)이는 만화책을 보며 이리 저리 뒹굴다가 드디어 훌라후프와 곤봉을 잡고 놀기 시작한 것이다.

“서린이, 경완이, 경서 전부 큰방으로 들어가, 누나가 묘기 대회 연습시켜 줄께”

큰누나의 말에 아이들은 일제히 하던 놀이를 멈추고 큰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아예 닫아 버렸다. 나는 속으로 웬 묘기대회(?)인가 했지만 일단은 아이들이 한 곳으로 들어가 버리니 훨씬 조용(?)한 분위기에서 저녁 준비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은근히 좋아했다.

그럼 그렇지, 조용할 수가 있나. 5분이 지나자 서현이가 엉엉 울며 부엌으로 왔다.

“엄마, 나 어깨를 모서리에 찍었는데 너무 아파 죽겠어” 벌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서현이는 동생들이랑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하다가 다친 모양이었다.

어휴, 보나마다다. 유달리 몸을 잘 다치는 서현이가 둔한 몸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 더구나 주변도 잘 살피지 않고 하니 어딘가에 부딪혀 다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아파 죽겠다고 우는데 구박할 수는 없는 일, 어깨부위에 맨소래담으로 마사지를 한 다음 파스를 붙여주고는 조심해서 하라고 일러 주었다. 조금 있으니 경완(6·쌍둥이 형)이가 부엌으로 와서 귓속말로 “엄마, 우리가 하는 것 좀 보러 오셔요” 하면서 나를 데리고 큰방으로 갔다. 내가 들어서자 좀 전에 언제 울었냐는 듯 씩씩하게 변한 서현이의 사회로 쌍둥이네 묘기 대행진이 펼쳐졌다.

“먼저 배경서(6·쌍둥이 중 동생, 막내) 군의 물구나무서기 묘기가 있겠습니다, 배경서군, 나와 주세요!” 큰누나의 소개가 있자 경서는 벽 쪽으로 가더니 바닥에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시작했다. “나무 모양으로 변신” 하는 다음 지시에 따라 경서는 다리를 45도 각도로 벌린 채 나무모양이 되어 버렸다.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칠 것 같기도 해서 나는 경서의 다리를 내리면서 제자리로 몸을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한껏 칭찬해 주었다. “이야, 우리 경서가 이렇게 물구나무서기를 멋지게 해내다니 엄만 정말 감격했어!” 이에 질세라 경완이는 매트리스 위에서 앞으로 구르기, 뒤로 구르기, 엉덩이 힘으로 퉁기며 일어나기 등 다양한 동작으로 솜씨를 뽐내더니 멋진 포즈로 인사까지 하고는 퇴장하는 것이 아닌가? 칭찬할 여가도 없이 이번에는 “사자들의 훌라후프 통과하기! ” 가 시작되었다. 서현이가 훌라후프를 적당한 높이로 잡고 있으면 경완이, 경서가 사자가 되어 훌라후프 쪽으로 몸을 날려 그 속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둘이 멋지게 해 내자 서린이도 해 보고 싶다며 뒤뚱거리며 몸을 날려 성공하고는 손으로 V자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는 배시시 웃었다. 다음에는 서현이의 차례였다. 올 봄에 학교 체육대회 때 썼던 곤봉에다 긴 리본끈을 매고는 이리저리 몸을 놀려 멋진 동작을 보여 주어 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드디어 서린이의 차례가 되었다. 훌라후프에 재미가 붙어 자기 키보다 더 크고 두꺼운 훌라후프를 허리에 감고 팔을 삐딱하게 한 쪽으로 쏠리게 한 후 여유 있게 허리를 돌리는 서린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100개를 넘을 때마다 숨이 꼴딱 넘어 가는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대었더니 서린이는 무려 499개를 하는 기염을 토하며 언니의 1421개 기록에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엄마, 서린이는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하며 꽁지를 내리던 서린이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 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엄마, 우리 밥은 언제 주나요, 한참 뛰었더니 너무 배가 고파요.”

서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8시가 넘어 있었고 방 안은 온통 이불이 깔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무렴 어떠랴, 언제 우리 집이 말끔한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묘기를 보여 주는데 이 정도쯤은 각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금방 밥 차려 줄께, 밥 먹고 우리 같이 청소하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