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노답’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기
[세상읽기] ‘노답’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기
  •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20.08.30 23:21
  • 수정 2021-01-0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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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요즘 수시로 떠오르는 감상이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고통스럽다. 코로나19라는 낯선 재난 가운데, 오래된 억압들의 위세는 여전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도, 웃음거리로 다루어지는 인종차별도, 공동의 신뢰를 파괴하는 광기의 신념도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는 마치 끝나기로 결정된 이야기 같다. 이럴 때 울분은 냉소와 만난다.

왜 희망을 가져야 하나. 청소년들과 종종 마주하는 질문이다. 이야기가 정확히 저 문장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과 인간은 수시로 ‘노답’이라 안 할 수가 없는 질문이다. 부모도, 선생도, 이웃도 존경할 수 없을 때, 대학에 안 가면 ‘못 배운’ 사람이 되어버릴 때, 채식을 실천하는데 패스트푸드점 밖에 일할 곳이 없을 때, 나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수행평가로 평가받을 때, 친구들이 나만 빼고 단톡방을 만들었을 때, 청소년에게 비관은 참 선명하다. 환대받는 구성원으로 이 사회에 자리를 가지는 것은 너무 아득하다. 이런 곳에서 희망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도 힘내자’는 얄팍한 강요로 위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순진한 냉소로 ‘응 맞아. 세상은 망했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세상이 끝났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맥락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10대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너무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늦게 이 사회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어딘지 무책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냉소에 나이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는 나와 세상을 분리해서 도망칠 기한은 지났다는 사인이 언젠가부터 머리 속에 반짝인다.

망해가는 게 분명해 보이는 세상에서, 망했다고 결론짓지 않으면서, 어떻게 10대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은 비관적 결정론을 뒤집을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면, 활달하고 웃는 소리가 커서 분명 ‘인싸’라고 생각한 사람이 학교에선 엎드려만 있는다고 할 때, 말도 잘하고 식견도 깊은 사람이 9등급으로 사는 일상을 말할 때, 핸드폰만 볼 줄 알았던 동아리 시간을 대화로 가득 채울 때, 10대 페미니스트가 쓴 포스터를 진지하게 읽는 누군가를 볼 때, 예상과 다른 서사가 시작된다.

나의 경우도 예측불가능성이 도움이 되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그다지 발언하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홀로 앉아있을 때, 나는 그가 곧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왔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오면 조용해져요. 학교나 학원에서는 애들 분위기 깨면 안 되니까, 또 날 불편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싶어서 막 활발하게 말하는데, 여기서는 안 그래도 되니까.” 그는 자기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청소년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가 어떤 표정과 태도라고 예측한 것이 틀렸을 때,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순간, 적어도 계산할 필요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예언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결정론을 뒤집는 것이 곧 기적이다. 다행히, 결정론으로는 인간의 삶을 말할 수 없다. 구체적인 맥락 위의 움직임은 규칙과 공식으로 대체될 수 없는 특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인간은 태어난 자로서 끊임없이 고유한 새로움을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존재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 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 8년 남아’라고 세계경제포럼이 요약한 자신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고쳐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절대로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세계를 구하는 일에 정해진 종료일 같은 건 없다.” 비관과 냉소에 빠져있던 나는 뜨끔했다. 또 너무 편해지려 했었나보다. 지금 필요한 건 어차피 죽는 존재가 아닌, 태어나 살아갈 존재로서 인간을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도착한 동료들과 무엇을 해나갈 수 있을지 먼저 ‘태어난 존재’로서 다시 질문을 시작해 본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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