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엔 플로리안, 한국엔 테라로사... 커피를 생활 문화로 만들겠다”
“베네치아엔 플로리안, 한국엔 테라로사... 커피를 생활 문화로 만들겠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0.08.28 11:46
  • 수정 2020-08-28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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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2002년 강릉에서 커피 볶는 공장으로
애호가들 사로잡으며 전국 14개로
세련된 공간 디자인도 눈길
공동대표 이윤선 등 직원 66% 여성
“기업, 문화적 영향력 갈고닦아야 빛나
맛·아름다움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 만들어
자랑스러운 지역 문화로 남고파”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제공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 제공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카페다. 괴테·바이런·찰스 디킨스 등 당대의 지성들이 이곳에 모여 예술과 삶을 논했다. 18세기 유럽에서 여성에게 문을 연 유일한 카페이기도 했다. 1720년 개업해 300년이 흐른 지금은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남았다.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문화공간은 어떤 곳들인가.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의 목표는 그 빈칸에 ‘카페 테라로사’를 채워 넣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나가는 카페, 유행을 선도하는 공간 그 이상을 바라봤다. 커피를 매개로 역사·문화·예술·건축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기획했고, 하나씩 실현해왔다. “테라로사를 맛 좋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들로 채워서 삶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18년 전 강릉의 작은 카페로 시작한 테라로사는 2020년 8월 현재 전국 14개 점으로 늘었다. 예술의전당점·포스코센터점 등 서울에 6개, 강릉에 4개, 경기 3개, 제주, 부산 각 1개 등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라는 고비를 맞긴 했으나,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본래 김 대표는 ‘은행맨’이었다.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조흥은행에서 20년을 일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자영업자로 인생 2막을 열었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 커피로 눈을 돌렸다. 2002년 강릉에 커피 볶는 공장을 열었고, 산지와 커피 농가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스페셜티 커피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커피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코로나19 시대에도 각지를 오가며 사업, 강연, 자문 등으로 바쁜 김 대표를 지난 17일 인터뷰했다.

- 프랑스 파리 진출을 준비 중이라던데, 코로나 19 때문에 어려움이 크실 듯합니다.

“올해는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됐죠. 유럽에 매장을 낸다기보다는 ‘문화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 우리나라 음식을, 예를 들자면 일본의 스시처럼 선보이고 싶었어요.”

- 무슨 뜻인가요?

”단순히 음식을 파는 행위를 넘어서 문화를 알리려 노력할 때 부가가치가 형성되고, 나라의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장사치’에 그치기 쉽죠. 일본을 예로 든 이유는 그런 것들을 자국 내에서 치열하게 준비하고 해외에 진출해 호평을 얻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미식 선진국’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죠. 잘 준비해서 개업한 작은 우동집 하나가 자동차 100대를 파는 것보다 더 문화적·금전적 부가가치가 높아요. 우리나라 기업들도 단순히 제품을 판다기보다는 문화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내실을 다져야 합니다.”

2002년 오픈 한 이래 강릉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 테라로사. 강릉의 외곽지역에 있는 테라로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컨텐츠에 대한 니즈를 느낄 수 있다
2002년 오픈 한 이래 강릉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 테라로사. 강릉의 외곽지역에 있는 테라로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컨텐츠에 대한 니즈를 느낄 수 있다

 

테라로사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1030 젊은 층 사이에서 테라로사 매장은 ‘핫플’로 통한다. 모두 김 대표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다. 요즘 그는 건축과 디자인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독학으로 쌓은 실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강릉시 등 지자체·공공기관의 건축·디자인 심의위원, 자문위원 등도 맡으며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 대표가 강조하듯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은 식문화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패션의 영역에 진입한 지 오래다. 소비자들의 ‘커피 감식안’은 나날이 똑똑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전 세계 큐그레이더(커피 감별사) 약 60%가 한국인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김 대표는 “기호식품인 커피가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며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 테라로사는 한국 커피 산업 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굳건하게 자리매김해온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죠.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점,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더 커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 마케팅을 하면서도 과욕을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마케팅으로 대성공을 거두는 모습에 샘날 때도 있지만, 그건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가끔 지나치게 보수적이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조금은 도도해야 하기도 하고, 품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장점이 거기 있다고 믿습니다.”

- 커피 산업 내 여성들의 진출과 활약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성 소비자 파워는 물론이고, 2018년부터 2년 연속 여성 바리스타가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서 우승했습니다. 테라로사의 여성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이윤선 공동대표를 포함해 테라로사 직원 2/3이 여성입니다. 저희는 성별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봅니다. 유능하고 우직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여성들이요.”

- 커피 산업 내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나요?

“지속가능성은 노력의 문제라기보다 ‘당연한 삶의 자세’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데 요즘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가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있지 않나 경계하게 됩니다. 커피 산업 자체가 저개발국의 저임금이라는 불합리한 구조에 기초하고 있고,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거든요.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어렵고요. 그걸 알면서도 ‘공정무역’을 너무나 쉽게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서 저희를 돌아보게 됩니다. 테라로사가 ‘공정’을 쉽게 말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대신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 합니다. 예를 들면 해외 농장에 원두를 사러 갈 때 호텔부터 렌터카 비용까지 모든 체류비용은 우리가 부담합니다.”

- 과열된 커피 시장에서 소비자는 어떻게 좋은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맛의 완성도’와 ‘공간’입니다. 카페는 공간을 파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니까요. ‘당신이 가는 카페가 어디인지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도 있잖아요. 결국 생활 수준과 경험치의 문제이기도 해요. 좋은 것을 많이 접하고 체험하다 보면 취향과 감식안이 생깁니다. 저도 세계를 여행하고 책을 많이 보면서 대오각성을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뜨이면서 설계,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경험치를 쌓는 과정이 험난하기는 합니다. 저희가 스페셜티 커피를 처음 할 때만 해도 몇몇 소비자와 전문가들이 ‘이런 커피를 어떻게 먹냐’며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래도 좋은 게 결국 좋은 거니까요. 요즘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경험치도 무척 높아져서 공간이 좋아도 커피가 별로면 발길을 돌립니다. 눈을 뜬 사람들이 시장을 만들고 흥하면 뒤따라오는 이들이 있고, 다시 시장이 형성되고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것이죠.”

- 눈여겨보고 계신 다른 카페 브랜드가 있나요?

“커피리브레, 프릳츠커피, 빈브라더스, 모모스커피 등 다들 인정하는 ‘1등 그룹’이 있죠.”

- 시장 규모는 큰데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나도 카페 한 번 차려볼까’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제게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대부분 말리고 있습니다(웃음). 한 10억 정도 있으면 잘 망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전문가를 고용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성공하는 경우는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현상 유지만 하거나, 적자를 보면서도 처분하질 못하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놀러도 못 가고, 감옥과 비슷합니다. 체력도 받쳐줘야 하고요.

자영업이라는 게, 치열함과 무한한 신념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제가 봉급쟁이 하다가 장사를 해보니까, 전혀 달라요. 성장하기 위해 온갖 머리아픈 짓을 해야 하고... 내가 뭐하러 이러고 있나 고민할 때도 있죠(웃음).”

- 테라로사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로 살아남고 싶어요. ‘베네치아에 가면 카페 플로리안에 가봐야 한다’잖아요. 테라로사도 한국의, 우리 지역의 자랑할 수 있는 명소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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