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등의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일제 수업 방식을 낯설게 보는 기회가 되길
[나일등의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일제 수업 방식을 낯설게 보는 기회가 되길
  • 나일등 사회학자
  • 승인 2020.07.28 18:08
  • 수정 2020-07-28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일등의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끝)
한 명의 선생님이 수십 명을
동시에 가르치는 ‘일제 수업’
효율적이지만 완전숩득학습·
민주시민교육은 어려워
울산 중구 다전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사와 첫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울산 중구 다전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교사와 첫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예루야, 코로나 이전의 학교 모습이 기억나니? 원격 수업에 익숙해진 탓에 교실 수업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공부하는 경험을 한 예루 세대는 ‘일제 수업(一齊授業)’ 방식이 자연스럽지 않은 신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제 수업이란 한 명의 선생님이 수십에서 수백 명의 학생에게 같은 내용을 동시에 가르치는 것을 말해. 맞아. 우리에게 익숙한 그 수업 방식이야.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야. 19세기 영국에서 개발된 것이니까 한 200년쯤 될까?

사람들은 오랫동안 ‘개별 지도’를 당연하게 여겼어. 개별 지도에서는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묻고 답하면서 공부를 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학생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으로 유명했어. 조선 시대 왕들은 경연(經筵)이라고 하는 수업에서 여러 명의 선생님과 토론을 했고. 유럽이든 아시아든 귀족들은 가정 교사를 두어 개별 지도를 하게 했어. 그럴 형편이 못 되는 귀족들은 서당과 같은 곳에 모여서 함께 공부했는데, 그런 경우에도 개별 지도가 기본이었어. 조선 시대 서당에서 학생들은 서로 다른 책으로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거나 시험을 볼 때면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일대일로 대화를 했지.

그러던 것이 약 200년 전에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많은 어린이를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수업 방식이 개발되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벨과 랭커스터라는 사람이 조교법(monitorial system)이라는 방식을 생각해냈는데, 넓은 교장(敎場)에 수백 명의 학생을 여러 줄로 앉히고 줄마다 조교를 두어 공부를 가르치게 했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기 힘들고 교장이 너무 시끄러워진다는 문제가 있었어. 그 후 윌더스핀이 관람석(gallery)을 설치해서 학생과 선생님을 마주 보게 해 조교를 없앴고, 스토우가 그것을 글래스고 시스템(Glasgow system)으로 발전시켰어. 그리고 영국 추밀원 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케이-셔틀워스가 학교의 기본 수업 방식으로 글래스고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많은 학교에 일제 수업 방식이 도입되게 된 거야.

일제 수업 방식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 장점은 물론 효율성이지.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혹은 군대에 복무할 병사)를 대량으로 교육(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초등교육)하기에 아주 적합해. 단점은 ‘완전습득학습(mastery learning)’이나 ‘민주시민교육(civic education)’이 어렵다는 점이야.

완전습득학습은 ‘알 때까지 공부하는 것’을 말해. 시험을 봐서 합격점을 넘으면 진급을 하고 넘지 못하면 같은 내용을 다시 공부하는 식이지. 일제 수업 방식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학년이 올라가는 ‘학급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가 되었는지 꼼꼼하게 살피기가 어려워. 그래서 전후진하는 법도 익히지 못했는데 주차 연습으로 진도가 넘어가 버리는 식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

민주시민교육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는 것을 말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시지만, 막상 질문하려고 하면 아주 힘들지? 그건 너희가 부끄럼을 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제 수업 방식에서는 의사소통(정보 흐름)이 한쪽(선생님에게서 학생으로)으로만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그런 거야. 선생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질문을 하다가 눈총을 받은 친구를 예루도 여럿 봤을 거야.

마음씨 좋고 똑똑한 어른들은 일찍부터 이런 문제를 알아채고 일제 수업을 대신할 방식을 궁리해왔어. 여러 아이디어를 실험하던 중이었는데 그러는 와중에 갑자기 온라인 학습 시대가 찾아왔어. 예상치 못한 변화지만 어쨌든 일제 수업 방식을 낯설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아. 부디 이 기회를 헛되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시험 점수가 낮게 나온 친구에게 ‘그건 네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라고 괜히 뒤집어씌우지 말고 반대로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연습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연습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일제 수업 방식은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게 될 테니까.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