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교육 프로그램 알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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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능전문가들을 활용한 예능수업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자원봉사를 요구하기보다는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진·우리교육 최승훈>▶

지난 7월 23일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가 제4차 인적자원개발회의에서 지역별로 국악 강사진, 연극 강사진, 문예 교사진 등을 꾸려 학생들의 정규 예능수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신문에 발표했다. 사실 이 정책 아이디어는 자이나교 승려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티쉬 쿠마르와 같은 - 대안교육론자 중에서도 혁신적인 - 마을 생활과 교육의 합치를 실행하고 있는 마을학교론자를 떠올리게 할 만큼 참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쌍수를 들고 반겨야 할 소리인데, “글쎄 제대로 될까”라는 의구심부터 드는 건 나 역시 잘못된 불신 풍조에 빠져 있기 때문일까?

나는 이 정책이 조금이라도 실효를 거두려면, 우선 기존의 지역교육문화에 대한 진단부터 철저히 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찰하고 체험한 지역교육문화 중 축구교실과 한문교실을 통해 지역교육문화가 발달하지 못하는 사정들을 풀어보기로 하겠다.

구별로 생활체육 무료 지원 많아

작년에 교육관련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생활체육협의회’를 알게 됐다. 88올림픽이 끝나고 국민 체육 문화를 진작하기 위해 자치단체별로 만든 것으로 국민들 체육활동을 무료로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서울시의 경우 대부분 구에 설치돼 있다. 서초구에도 있었는데 작년의 경우 수영, 축구, 탁구 등의 생활체육 정교사들이 배치돼 있었다. 교사들은 복지관에 파견되거나 조기체육 등을 지원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좋은 제도가 있었다니!” 감탄하며 나는 아들 친구들을 10여명 모아 교사 지원 요청을 했고 프로 축구선수 출신의 훌륭한 코치를 소개받아 주 2회 동안 몇 달간 잘 진행했다. 내가 사무실에 연락을 했을 때 사무국장은 매우 놀랐다.

이렇게 학부형이 팀을 만들어 요구해 온 건 내가 처음이라는 거였다. 나 역시 뜻하지 않은 횡재라 생각했으니까. 중요한 건 이런 좋은 제도가 전혀 홍보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이것이 지역교육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첫 번째 문제다.

그런데 이 횡재는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있다가 선생님이 다른 팀의 축구 코치로 가셨기 때문이다. 체대 출신이거나 선수 출신인 선생님들이 서울시 별정직 공무원 생활체육강사로 받는 급여는 채 백만원이 안 됐다. 이것을 알고 부모들은 코치님 교통비조로 월 1만원씩을 걷어 10여만원을 드렸으나, 맞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를 둔 생활인의 급여로는 터무니없이 적은 박봉이다. 따라서 생활체육 교사라는 자리는 아마도 선수 출신 선생님들이 잠시 머무는 곳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듯 싶다.

사무실에 문의하니, 부모들이 원하면 축구 선생을 다시 알아봐 주겠지만, 언제 구해질지는 자신들도 확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부모들은 축구에 맛들인 아이들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인터넷에서 유료 축구 교실을 검색해 월 2만원(나중에 들어온 아이들은 월 3만원)에 주 1회라는 조건으로 축구 교실을 지속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3개월 지속했을 때 사무실에서 축구 강사를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무료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우리 부모들은 그 쪽 축구를 포기했다. 언제 다시 코치가 떠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강사료 보수 너무 낮아 민망

내가 몇 년 전에 한 1년 봉사했던 동사무소 한문 교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은평구에 있는 ‘품앗이 엄마사랑 방과후 교실’을 연구차 심층면접 하러 가서 보게 된 ‘서당식 한문교육’은 단숨에 내 얼을 빼앗아 버렸다.

그 곳은 뜨개질, 만들기, 요리, 영어, 독서 등 다른 교과들은 모두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가르치고 있었고 한문만 지리산에서 내려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상투 튼 선생님에게 옛날 서당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한자를 한 자 한 자, 어렵고 재미없게 배우는 지금의 한자 교육이 아니라 사자소학의 문구를 옛날 서당에서처럼 그대로 성독(聲讀)해내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며, 전통교육 방식의 우수함,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호연지기, 인성교육과 생활교육으로서의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는 내용 등, 전통 교육의 복합적 우수성에 매료된 나는 그 음을 익히고 맘에 안 드는 성차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내용은 개작하고 버리고 하면서 직접 내 지역 아이들에게 실습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주 1회 하고 방학 한 번은 주 3일씩을 2시간씩 봉사했다. 강사료를 주기는 했지만, 한 학기에 16만원인가를 받았고 방학에는 40만원 가량을 받았는데, 강사료라기보다는 차비조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 강의를 위해 나는 밖에서 택시 타고 들어오고 방학 때도 택시 타고 나가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봉사가 어려워져 주변에서 대리 강사를 찾았다. 동양철학 박사인 후배가 한 번 방학 동안 하더니 두 손을 들었다.

다시 동양철학 박사, 동양철학과를 나온 어머니를 소개받고 내가 사자소학을 가르친 어머니들도 섭외 했으나 객관적인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일신상의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정도 강사료로는 들어가는 수고를 보상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을 학교로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미 다른 일들로 너무나 바쁘고 또한 그들의 전문성에 걸맞는 대접도 받는 사람들일 것이다. 국가의 일이니 ‘뜻으로 봉사해주십시오’하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뜻이란 자고로 개인이 세우는 것이지 강요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런 일을 실행할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 강사료를 부모들에게 부담하는 안도 나는 반대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교육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무교육’이 명분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계층별 교육의 형평성 문제가 반드시 거론될 것이다. 이 경우 국가의 대안은 무엇인가? 실행을 위해 고려할 요소들을 충분히 검토해, 모처럼 제시된 반가운 교육 정책안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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