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N번방 피해자 법정 증언을 앞두고
[여성논단] N번방 피해자 법정 증언을 앞두고
  •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 승인 2020.06.18 07:42
  • 수정 2020-07-07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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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입증 위해 필수인 법정증언
보복·낙인의 두려움·자책으로
불법촬영·유출 피해자들 고통
재판부, 성인지 감수성 갖기를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비롯해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팻말을 들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비롯해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팻말을 들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사건 1

증인은 불법촬영 피해자였다. 회사 동료 남성이 그녀의 방 커튼 속에 초소형 Ip카메라를 설치해 몰래 촬영했다. 무선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저장매체 교체 등을 위하여 집 안을 드나들 필요도 없이 가해 남성은 6개월 넘게 집 밖에서 실시간으로 촬영물을 전송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 법정증언을 하기로 했다. 재판부에 비공개 재판과 함께 증언하는 동안 피고인을 법정에서 내보내는 퇴정조치를 미리 요청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대신 피고인석 앞에 가림막(차폐막)을 세워서 증언석에 앉은 피해자의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피고인과 같은 공간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말에 몸을 심하게 떨며 울먹였다. “저 사람이 몰래 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고작 가림막 하나 너머로 다 보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도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끔찍해요.” 그제서야 재판부는 피해자의 호소를 이해한다며 피고인을 퇴정시켰다.

#사건 2

증거조사 대상은 피해자의 자위동영상이었다. 피해자는 자신만 보려는 용도로 스스로 동영상을 찍었다. 보관은 종합포털회사에 있던 피해자 명의 클라우드 드라이브에 했다. 연인이던 가해자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몰래 알아내서 해당 동영상을 모두 자신의 컴퓨터로 옮겼다. 피해자는 신고를 망설였다.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데, 아무리 수사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내밀한 동영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어렵게 신고를 결심했고, 수사기관에 엄정한 증거자료 관리를 강력히 요청하는 의견을 재차 전달하였다. 피해자의 고통은 재판과정에서도 계속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영상에 대한 증거조사는 재판정에서 “재생하여 청취 또는 시청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즉 피고인이 출석한 법정에서 재생해야만 증거로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비록 비공개 상태이긴 하지만 재판부 이외에도 피고인과 그 변호인, 법정경위, 교도관 등 10여명의 남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해영상물 30여개 모두가 법정에서 재생됐다.


범행 입증과 가해자 엄벌을 위해선 피해자의 적극적인 신고와 수사협조, 법정증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성범죄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나 법정증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2차 피해 없이 증언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피해사실을 공개 진술할 때 세 가지 심리적 압박을 경험하게 된다.

첫째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공포다. 가해자가 눈앞에 있을 때 이 두려움이 배가 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피해자가 겪는 피해정도가 크지만 처벌은 낮은 수위인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영상유포라는 손쉬운 보복의 수단이 있기 때문에 가해자의 현전이 공포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둘째, 다수 대중 앞에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입게 될 사회적 낙인의 두려움이다.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사회에서 성폭력을 폭력이 아니라 부적절한 성행위로 관음함으로써 오히려 피해자가 ‘시선의 폭력’의 2차 피해자가 되는 일은 다반사다. 한국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은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두려움은 피해자 입장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어려움은 피해자 자신에 대한 자책과 자기환멸의 정서이다. 성범죄는 친족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범행을 인지하고 인정하기까지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피해 직후 법률이 요구하는 ‘적절한 대응조치’, 즉 적극적 저항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소송과정에서 피해자는 이 대목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저항했어야 하나’, ‘내가 원인을 제공한 것인가’ 등등의 자기검열과 이로 인한 자책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낯선 가해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경우에도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나’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성범죄 피해자는 보복의 공포, 낙인의 두려움, 자책으로 인한 자가환멸의 복합적 감정으로 고통받는다. 여기에다 믿었던 관계의 파탄으로 인한 인간과 사회 자체에 대한 환멸, 소송과정에서 체험하는 이해받지 못하는 소외의 감정까지 다양하고 깊은 심리적 블랙홀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둔감한 근본적 이유는 성폭력을 ‘친밀한 폭력’으로 보지 않고 ‘폭력적인 성’으로 보는 관음주의적 시각 때문일 것이다. 다음 주부터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사건의 본격적인 증거조사와 피해자 법정진술이 시작된다. 이 사건은 특히나 피해자가 법정진술을 할 때 심리적 압박이 클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증거조사나 증언과정에서 피해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고통에 대한 재판부의 깊은 공감을 기대해 본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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