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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8년 만에 미국에서 만난 친구는 나중에 은퇴하면 여행이나 다니고, 실컷 수다도 떨면서 좀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분이었고, 그런 바쁜 중에도 나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 좋게 나이 들기’를 전공(?)하는 사람답게 한 마디 했다.

“여행이든 뭐든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미루지 말고 지금 하려무나. 이제 우리,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 아냐? 더군다나 너는 여유도 있고, 자격도 충분해.”

그러나 친구는 마치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그럴까?” 하고 반문할 뿐이었다.

랜디 코미사(Randy Comisar)의 지적처럼, 많은 사람들은 훗날을 기약하는 인생설계를 가지고 있다. 즉 오늘은 해야 하는 일을 한다(1단계), 그러다가 먼 훗날 마침내…하고 싶은 일을 한다(2단계)는 계획이 그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공하고, 다음에 퇴직하면, 그리고 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그 다음은 취미생활 등을 포함하여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라고 마음먹는다.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내일의 어떤 성과를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어린 시절의 놀이생활을 반납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의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을 미루며, 또 빠른 취업을 위해 대학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취업 후에는 승진을 위해, 승진 후에는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미뤄두어야 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란 먼 훗날의 즐거움을 위해 바치는 희생의 제물처럼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이런 삶이 정말 바람직할까? 성공할 때까지 꿈을 미루어놓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 아닐까?

내 친구 중에는 30대부터 쉰 살이 다 된 지금까지 고시공부만 하는 친구가 있다. 독일의 법대 도서관에서 10여 년, 그리고 8년 전부터는 신림동의 조그만 고시원에서 공부에만 몰두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다. 그녀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어떤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모델일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외형적인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나머지 자신을 너무 혹사하고 내면적인 성취를 너무 무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근황을 아는 몇 안 되는 친구로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며 대화를 해보려고 잔뜩 결심해 보지만, 번번이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전화를 할 때마다 그녀의 상태는 둘 중의 하나, 즉 시험이 멀지않아 전화 통화하는 시간조차 아껴야 하는 경우 아니면 이미 실패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의를 다지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하느라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어두기 일쑤이며, 심지어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어느 날 퇴직을 맞게 되기 십상이다.

작년에 퇴직자 조사에서 만났던 이진기(61세)님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흔히 퇴직하면 그 동안 하고싶었던 여행이나 실컷 하며 한가로이 지내겠다고들 얘기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까짓 것 그 때 가서 부딪혀보자는 심정도 있었고, 아무튼 돈만 있으면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퇴직하고 나니 하루를 보내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어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운동만 한 적도 있었지요. 또 책도 읽어보았지만 모두 한계가 있더군요. 전에는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돈으로 해결될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요. 물론 돈도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요.”

이진기님은 해결책까지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그래서 저는 직장 후배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하지요. 늦어도 퇴직 5년 전부터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사실 5년 전도 늦다고 봅니다. 젊었을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과연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또 조그만 일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그 자신은 몇 달 동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배우는 것’과 ‘봉사하는 것’이 포함된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배우는 것과 봉사하는 것은 더 이상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힘들게 알아낸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진기님의 얘기를 듣고, 나는 문득 카메론(Julia Cameron)이 얘기한 바 있는 ‘시간의 사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 자신 얼마나 시간의 사치를 누리고 있는가.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한 창조적 탐험의 시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즐겁게 해주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치는 다 나쁜 것인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물질적 사치와는 달리, 시간의 사치는 오늘 해야 하는 일과 먼 훗날 하고 싶은 일의 간격을 메워주며, 그래서 나의 하루와 미래를 보다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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