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은 여전히 내 꿈”

선거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다. 12년을 원외에서 떠돌았다. 더 이상 얻을 게 없을만큼 다 잃었다.

재선 국회의원이란 경력은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차라리 그래서 더 홀가분하다. ‘처음처럼’의 경구를 해 볼만한 용기가 다시 생긴다. 양경자 한나라당 도봉갑지구당 위원장의 얘기다.

양 위원장이 요즘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최고위원급인 당 상임운영위원에 뽑혔고, 지역구에 네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여성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면 움찔하는 요즘, 그의 도전정신은 시사하는 바 크다. 불굴의 정치인, 양경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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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 정치를 ‘졸업’하지 못한 이유가 뭡니까.

“옛날 국제회의 나가보면 8선, 9선 여성의원들이 수두룩했어요. 부럽기 짝이 없었죠. 요즘엔 남들이 그럽디다. 20년 정치해놓고 지금 떠나면 어떡하냐고.”

- 3번 낙선하셨는데요.

“반면교사로 삼아야죠. 하지만 누군가는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선례를 남겨야죠. 말로만 지위향상 되는 게 아니잖아요.”

- 쉽지 않은 싸움이죠?

“누구는 버티는 게 불가사의랍니다(웃음). 하지만 양경자에게 기대와 희망을 건 이들이 힘이 됩니다.”

한나라당 양경자(63) 도봉갑지구당 위원장은 ‘불굴’의 정치인다웠다. 자신에 찬 말투와 손짓에서 정치경력 23년차의 만만찮은 ‘내공’이 배어났다. 민정당 여성국장으로 정계에 발 디딘 뒤 12·13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냈고, 부대변인·여성특위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중견임에랴.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인 약점 하나. 총선에서 세 번 떨어져 원외에서만 13년째다. 그 와중에 돈은 바닥났고, 묵묵히 후원하던 이들도 떨어져 나갔다. 젊음과 패기를 찾는 요즘 정치권 코드와도 거리가 생겼다. 지금껏 버틴 건 정말 ‘불가사의’다.

“30∼40대 후배들이 많지만, 지역에 도전하는 이가 없어요. 내가 쉽게 정치를 관두지 못하는 이유죠. 선배들이 선례를 남겨야 하니까요. 변명 같으려나?” 물론 변명으로 듣는 이들도 있다. 아예 자리 물려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능력없는 것으로 드러난 지도 모르죠(웃음). 하지만 지역구에 뛰어들어 의원이 되고, 열심히 활동하는 좋은 사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여성의 리더십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깨야 하구요.” 양 위원장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그는 지난달 당내 최고위원급인 상임운영위원에 뽑혔다. “자리를 물려달라”는 인사들이 나왔고, “내가 계속해야 하나”란 자괴도 들던 무렵이었다. 전당대회 때 단상에 앉아 자신의 ‘저력’을 확인한 순간, “다시 평가받고 싶다”고 다짐했다.

12년 원외생활, ‘불가사의’

“상임운영위원이 됨으로써, 내가 그동안 휴면하지 않고 당당히 활동해 왔다는 걸 보여준 셈”이라는 양 위원장은 “원외인사로 느끼는 위축감을 벗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계기”로 상임운영위원 역할을 다 하겠다는 포부다.

17대 총선 8개월 전. 양 위원장은 내년에 김근태 민주당 고문과 세 번째 맞선다. 15대 때 3.4%, 16대 때 5.7%(6000여표)차로 졌다. 특단의 선거전략이 필요하지 않을까. “불법선거 할 생각이 아니라면 특단의 전략이란 건 없어요. 기권을 막아서 내 지지표를 제대로 얻는 수밖에.”

보통 사람 같으면 포기하거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오기를 앞세울 만 한데도, 그는 참 여유로워(?) 보였다. 패기와 참신함을 선택의 잣대로 삼는 요즘 유권자들에게 양 위원장은 어떤 호소로 다가설지 궁금하다.

“지난번엔 20∼30대를 겨냥하지 못했던 게 실수였어요. 우리 도봉갑 지역구에 신접살림 차린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과 함께 해야죠. 우리 지역구를 맡을 새 그릇을 택하자는 바람도 일으키구요.” 변화를 일구겠다는 포부다.

“유권자 기대 부응할 터”

참여정부를 향한 쓴 소리도 대단했다. “개혁을 말할 땐 과거를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닙니다. 10년 뒤 상황을 내다보고 거기에 맞춰 지금 개혁을 해야 해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주5일제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죠.”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기준을 과거가 아닌 미래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들의 정치진출도 마찬가지. 우리 남성들의 기준으로는 여성이 단지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겠지만, 여성의 능력을 검증한 선진국 사례에서 나타나듯 ‘미래의 활용도’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

짧은 여름휴가 동안 미얀마에 선교센터 건립을 위해 떠난다는 양 위원장에게 다시 물었다.

- 뭐가 제일 힘들었습니까.

“선거 할 때죠. 돈 많이 들고, 사람 관리도 어렵고.”

- 힘이 날 때는요?

“내게 희망과 기대를 가진 이가 아직 많다는 점이죠.”

- 정치인으로서 꿈이 궁금합니다.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꿈, 유효합니다.”

▲40년 부산 출생 ▲64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78년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 ▲81년 민정당 여성국장 ▲85년 제12대 국회의원 ▲88년 제13대 국회의원 ▲97년 총재 여성특보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동북권대책위원장 ▲2003년 상임운영위원(최고위원급)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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