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성 따를 필요 없어”… 부성강제→부성우선→부모협의 수순 밟는다
“아빠 성 따를 필요 없어”… 부성강제→부성우선→부모협의 수순 밟는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05.10 08:00
  • 수정 2020-05-11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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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개선위, 민법 개정 권고
자녀 출생 시 아빠 성 우선
따르도록 한 원칙 폐기 본격화
현재 자녀에게 엄마 성 주려면
‘혼인신고 시’ 미리 결정해야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한다. ©여성신문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한 민법상 ‘부성우선주의’가 본격적인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 로드맵’에 담긴데 이어 법무부 산하 위원회가 원칙 폐지를 정부에 권고하면서 ‘민법 제781조 전면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위원장 윤진수, 이하 법제개선위)가 8일 민법상 부성우선주의 원칙 폐기를 정부에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부성우선주의란, 민법 조항에 따라 자녀 출생 시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하는 원칙을 뜻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 출생·가족·양육 분야 법제 분야의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된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 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가족문화와 아동 권리 관련 과제를 논의해왔다. 위원회는 “평등한 혼인관계를 구현하고 가족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할 수 있도록 부성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의 협의를 원칙으로 자녀의 성을 결정하도록 민법 제781조를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성우선주의란, 민법 조항에 따라 자녀 출생 시 아버지 성을 우선 따르도록 하는 원칙을 뜻한다.

 

혼인신고서 4항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표시해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혼인신고서 4항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표시해야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혼인신고 때 ‘협의’해야
어머니 성 따를 수 있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민법 제781조 제1항이 규정한 부성우선주의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로 협의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 시’ 결정해야 한다. 절차도 복잡하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4항 질문에 ‘예·아니오’로 답해야 한다. 혼인 신고서의 해당 항목에 ‘예’라고 표시를 하면 담당 공무원은 부부에게 협의가 충분했는지를 물은 뒤 협의서를 따로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면 ‘부와 모 사이에서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합니다’라는 내용의 협의서와 주민등록증 사본을 제출해야 모든 절차가 끝난다.

혼인신고 시 4항 질문에 ‘예’라고 표시하지 않으면 나중에 태어날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주고 싶어도 절대 줄 수 없다. 그게 현행 법이다. 아버지 성 따르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고, 어머니 성 따르는 것을 ‘예외’로 규정한 탓에 벌어진 현상이다.

 

15년 전 호주제 사라졌지만
잔재인 ‘부성우선주의’ 그대로

아버지의 권리를 어머니의 권리보다 우선하고 있는 민법 제781조는 성불평등 조항으로 헌법의 가치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헌법은 제36조 제1항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성우성주의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16조 제1항(g)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1984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을 비준해 이행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가족성에 대해 부부가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는 제16조 제1항(g)은 지키지 않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페위원회도 한국정부에 ‘유보(reservation)’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과거 부성주의는 ‘부성강제주의’였다. 자녀는 어떠한 예외도 없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했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부성우선주의 일부 개정됐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민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아들을 1순위로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한 호주제는 사라졌다. 호주제는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감정을 내포해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혼인한 여성은 남편의 호적으로 입적하도록 여성을 남성의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했다.

당시 헌재는 부성우선주의 자체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부성주의는 규범으로서 존재하기 이전부터 생활양식으로 존재해 온 사회문화적 현상이었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여전히 부성주의를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헌재의 설명이었다. 당시 유일한 여성인 전효숙 재판관만 “국가가 일방적으로 아버지 성을 강요하는 부성주의는 오늘날 생활양식에 비춰 더 이상 정당화 될 수 없고 양성평등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500명 중 70.4%가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500명 중 70.4%가 “자녀의 출생신고 시에 부모가 협의하여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여성가족부

 

국민 70% “부모 간 협의로
자녀 성 정하도록 법 바꿔야”

부성우선주의 폐지는 2018년 12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정책 로드맵’에도 담겨 있었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가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출생신고 때 부모가 협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에 70.4%가 찬성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찬성 비율이 77.6%, 남성은 63.4%였다.

부성우선주의 원칙에 근거한 자녀 성 결정제도를 달라진 국민 의식을 반영하고 국제사회에서 권고에 따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제도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 보완계획을 통해 자녀의 성·본 결정 협의 시점을 현행 혼인신고 시에서 자녀출생 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자녀의 성을 결정하는 시점을 아이가 태어나는 때로 바꿔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2018년 12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통해 부성우선주의 원칙에서 부모 간 협의 원칙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부성우선주의 원칙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불합리한 법제라는 판단에서다.

혼인신고 시→출생신고 시
자녀 성 협의 시점도 변화

법제개선위는 자녀 성을 부모가 협의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출생신고 시’로 바꾸자는 의견과 ‘혼인신고 시 정하되 출생신고시 변경’하는 방안이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부모가 협의를 하지 못했을 때 자녀 성 결정 방법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법원이 자녀의 성 지정권자를 정해 그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자는 의견과 법원이 자녀의 성을 직접 정하도록 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법제개선위는 민법 제781조1항 개정과 함께 같은 조 5항에 규정된 ‘인지 시 부성우선원칙’도 폐지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5항은 ‘혼인외의 출생자가 인지된 경우 자는 부모의 협의에 따라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종전의 성과 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비혼모가 자신의 성을 자녀에게 주고 키우다 아이의 친부가 이 상황을 인지하게 되면 자동으로 자녀의 성이 친부의 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법제개선위는 “현행 혼인외 자의 인지 뿐만 아니라 파양, 친자관계부존재확인 사건 등 종전의 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경우까지 확대하는데 모두 동의했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든 법무부는 “관련 법제의 개선 방안을 마련해 여성·아동의 권익 향상 및 평등하고 포용적인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 부성우선주의 폐기를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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