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⑪ 식물 대 동물
[사직동 캣맘의 보통날] ⑪ 식물 대 동물
  • 조은 작가
  • 승인 2020.05.09 07:45
  • 수정 2020-05-07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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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자주 느낀다. 내가 밥을 주는 고양이에게 겨울집을 놓아준 젊은 여성이 생겼고, 사료를 집으로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틈틈이 우리 동네 사진을 찍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인 사진작가도 이따금 간식을 문 앞에 달아두고 사라진다. 심지어 꼬리를 들개들에게 다 뜯어먹힌 젠틀맨의 병원비도 도움 받았다. 지금껏 없던 일이다. 이뿐인가. 얼마 전에는 길고양이 급식을 하고 있을 때 필라델피아에서 왔다는 백인 청년이 지나가다 내게 말을 걸었다.

“나도 필라델피아에서 길고양이에게 급식을 해요. 괜찮으면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요.”

나는 이방인의 도움이 어떨지 궁금했고, 그러라고 했다. 그는 사료값에 보태라며 만원을 주고 갔다.

그러나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사료가 비에 젖지 않도록 목공소에서 짜서 갖다놓은 급식집을 계속 망가뜨리고, 사료가 담긴 그릇에다 거듭거듭 배설을 하고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프리모 레비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이것이 인간인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팍 낮췄다. 낮춰도 낮춰도 더 낮춰야 한다는 다짐을 하다 보니 내가 그들과 동종인 인간이라서 점점 슬퍼진다. 탄생하는 순간 인간 역시 발아된 씨앗과도 같은 치열한 생존을 위한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삶과 죽음,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식물 역시!)도 갖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행위가 처음 저지른 잘못이라며고 용서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징후들을 무척 불안하게 바라본다. 사실 떡잎은 한 생명의 첫 잎사귀일 뿐 정확한 실체가 아니다. 어떤 나무의 떡잎도 앞으로 무성해질 잎사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첫 잎이 생기면, 이미 뿌리가 생긴 것이다. 뿌리의 욕망을 생각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관용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실수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 적절히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편하고 좋다. 나는 근면검소한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감정과 돈에 인색한 사람에게 결코 끌리지 않는다. 요즘 친구들끼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긴급 지원금까지도 몽땅 저축부터 해야 한다는 자들이 꽤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욱여넣기 위한 목적이 아닌 빼내 쓰기 위한 지갑의 용도를 잊고 사는 사람들, 동전 하나 떨어뜨리지 않는 인색함에는 다른 생명에 대한 관용이 들어설 틈이 없다.

캣맘인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부끄러울 정도로 엥겔지수가 높지만, 집에는 꽃이 있을 때가 많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캣그라스도 자라고 있다. 캣그라스는 귀리나 보리순 같은 것인데, 요즘은 거기 더해 캣잎과 마따따비 같은 식물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하지만 나는 텃밭을 정성스레 가꾸는 사람들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배변을 한 뒤 땅에묻는 고양이들 습성 때문에 길고양이들이 텃밭을 파헤치고, 그 순간 분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아니라도 나는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시장 경제를 헤친다는 생각도 이따끔 한다. 정성스런 텃밭이 사실은 농부들의 수입과 직결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텃밭에다 채소를 심어 먹는 인심 후한 사람을 좀체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꽃이나 나무를 심는 사람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 황폐한 공유지에 봄부터 꽃씨를 심고, 뙤약볕에 꽃모종을 옮겨 심어 가을까지 꽃을 보도록 하는 사람과는 마주칠 때마다 웃게 된다. 우리 동네에서 처음 그 일을 한 사람은 내 연배의 여성이었는데, 병이 나는 바람에 한 남성이 그 일을 물려받아 몇 년째 하고 있다. 봄이 되기 전부터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는 사이 완연한 봄이 되었고, 그는 이제 거의 날마다 눈에 띈다. 퇴근 뒤 허둥지둥 물통을 들고 나와 어둠 속을 걷는 그를 어제도 보았다. 물과 사료와 간식과 구급약이 담긴 수레를 끌고 다니는 나처럼 그도 다른 이보다 일찍 땀을 흘릴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어머니도 몇 해 동안 텃밭을 가꾸었다. 그곳에서 나온 농작물을 나눌 때 어머니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텃밭에 물을 줄 때마다 쇠약한 어머니의 신경은 곤두섰고, 책이나 보려던 우리 형제들과 신경전을 벌여야만 했다. 처음엔 흙을 만지며 더 건강해질 거라 믿었던 어머니는 텃밭 때문에 우리에게 인심을 잃었고, 우리 또한 게으른 자식들로 낙인 찍혔다. 심지어 텃밭은 관절과 허리가 약한 어머니의 건강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밤마다 앓는 소리를 냈고, 우리는 입을 모아 “그냥 사 먹자!”며 텃밭에 집착하는 어머니를 개탄했다.

아, 우연의 일치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사직동재개발2구역에다 누군가가 독극물을 살포할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텃밭 농사를 너무도 잘 짓는 중년 여성이다. 나쁜 예감은 무섭게도 잘 들어맞는 법이다. 나는 일찍부터 이런 날이 올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동요되지 말자. 그 여성은 5년 전 이 골목에 나타났는데, ‘난 이렇게 구질구질한 동네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라는 내면이 온 몸에서 읽힌다. 늘 고개를 높이 들고, 절대로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 남이 인사하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는다. 그녀가 약을 놓을 것 같다는 곳에는 열 살이 넘은 길고양이도 있다. 폐가에서 자다가 문이 닫히는 바람에 집 안에 갇혔던 고양이 자매를 사흘 만에 구조한 적이 있는데, 그 녀석들도 몇 년째 거기서 밥을 먹고 있다. 거기서 밥을 먹는 고양이들은 실은 그녀보다 먼저 그곳에 정착한 선주민이다. 새들이 인간의 머리 위에서 마음껏 날며 살 수 있는 것처럼 길고양이들도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새들이 인간의 머리에다 배설물을 떨어뜨렸다고 하늘 길을 막거나 잡아서 죽일 수 없는 것처럼, 길에서 살며 흙을 파는 길고양이들도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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