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용자는 도망 중
[세상읽기] 이용자는 도망 중
  •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 승인 2020.03.25 18:45
  • 수정 2020-03-25 1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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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텔레그램에서 여성 성착취 불법 촬영물을 유포해 억대 이익을 얻은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이 마침내 붙잡혔다. 조주빈과 공범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을 상대로 알바 알선을 미끼로 성착취 동영상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서 계속 수위를 올리는 악랄한 수법을 썼다. 이렇게 ‘노예’로 전락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은 채팅방의 남성들에게 공유되고 거래되었다. 밝혀진 피해 여성은 74명. 이 중에는 미성년자도 16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여성 피해의 심각성 만큼이나 남성 이용자들의 규모도 충격적이다. 경찰 조사 결과, 60여개의 ‘N번방들’의 동시접속자 수는 25만명에 이르고 일부 가입자의 경우 성착취물을 감상하기 위해 입장료로 150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이 같은 범행의 악랄함과 피해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운영자는 물론 이용자들의 신상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운영자 조씨의 신상공개는 210만명, 이용자들의 신상공개는 140만명의 동의를 각각 얻었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분노하게 하는가?

N번방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은 한국사회의 성착취 불법 촬영 범죄의 전개 양상이 끔찍한 좀비 영화 같기 때문일 터이다. 2016년 6월 원조 성착취 사이트 ‘소라넷’이 폐지된 이후에도 웹하드 카르텔, 정준영 단톡방 성착취물 공유사건, 다크웹, 텔레그램 N번방, 벗방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가고 있다. 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범행수법은 더 교활하고 잔혹해졌다. 하나를 폐쇄하면 또 다른 하나가 더 흉악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쳐든다. 디지털 성착취 산업은 좀비처럼 불멸이다. 날로 교묘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대하는 국가기관의 태도는 미심쩍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무능한 것인지 성착취 산업의 뒤만 바라보고 있는 인상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 악랄한 범죄 수법에 맞춤한 법조항이 마련되고, 막대한 피해자의 규모가 온전히 계산되고, 디지털 시대에 이 범죄가 갖는 징후적 의의가 제대로 해석돼 중형으로 이어질 것인가? 주범인 조씨와 공범들은 혐의가 사실로 인정될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의 양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주범 조씨에 대해서는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성착취 범죄보다는 중형이 내려질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주범에 대한 형사처벌의 정도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이용자들에 대한 조치이다. 왜냐하면 성착취 범죄는 근본적으로 이용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운영자가 끊임없이 좀비처럼 등장하는 특성을 가진 범죄이기 때문이다. 성착취 사이트의 운영자는 좀 더 교활하고 좀 더 대담하고 좀 더 탐욕적인 이용자일 뿐이다. 따라서 성착취 범죄가 근절되려면 이용행위의 범죄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N번방 사건 이용자들에 대한 사회적·법적 처벌 여부는 성착취 이용에 관한 시민사회의 젠더감수성을 향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음란사이트 단순 가입자의 경우 벌금형 정도를 선고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구매자와 소지자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강화되어야 한다. 디지털의 익명성, 비가시성에 숨어서 가장 취약한 상황의 여성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성범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이용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느샌가 이들은 제공자나 운영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텔레그램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주범이 구속되자 다수의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이 아닌 디스코드 등 다른 앱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여전히 성착취물을 활발히 공유 거래하고 있다. 운영자만 처벌하고 이용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디지털 매체를 매개로 구조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젠더폭력을 전면화 하는 대신, 한 비틀어진 캐릭터의 윤리적 일탈로 귀결될 수 있다.

N번방 사건은 지금까지의 디지털 성범죄들이 축적되어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범죄였다. 그만큼 처벌에 적용하는 법적 문제도 복잡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현행의 사법체계에서는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 탓인지 이용자 전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자는 요구가 크다. 하지만 이용자들마다 행위의 가담 정도가 다양해서 이용자 전체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앞으로 성착취물 이용자 처벌에 대한 좀 더 정교하고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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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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