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걸어다니기도 무섭다
여자들 걸어다니기도 무섭다
  • 김선희 기자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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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일상 속의 성범죄
최근 여성과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납치, 유괴 등의 강력 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면서 이에 대한 안전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늘어나는 여성안전 문제와 관련해 남자들에 비해 여성들이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간이나 가정폭력 등 명백히 드러나는 여성관련 폭력뿐만 아니라 지하철, 길거리, 밤거리 등 대중이 운집한 공개적인 장소에서도 여성들이 느끼는 폭력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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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상황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이에 대한 대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여성 안전망의 실태를 현장 취재했다.

















지하철·길거리·가정·직장

여성 일상이 범죄의 현장






“그 순간 좀더 걸음을 빨리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 공포(恐怖)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더니, 그럴 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鋪道) 위에서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수필 <구두>에서 소설가 계용묵은 창경원 곁담을 끼고 벌어진 이 해프닝을 가리켜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라며 세태를 개탄했다지만 무분별한 납치와 성폭력이 판치는 오늘날 우리들은 수필 속 ‘치맛귀가 웅어하게 내딛는’ 여자에게서 서글픈 자화상을 읽는다.



달리는 지하철 공포 쫓을 인력이 적다



“밤늦게 집에 가려고 골목길 지나갈 때요.” “사람이 몇 명 없는 지하철을 타면 무서운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살면서 특별히 원한 산 일도 없는 젊은 여성들이 어두운 골목길과 지하철에서 위기감과 공포를 경험했다고 토로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이 특히 이들 장소에서 공포를 느끼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200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9501건의 성폭력 사건 가운데 길거리에서 1593건이 일어나 성폭력발생장소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지하철 역시 서울, 부산 등 일부 대도시에서 운용되고 있지만 123건이 발생, 별도 분류가 돼 있을 만큼 교통수단 중 성폭력발생장소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성폭력 사건-경찰청 <범죄분석> 강간,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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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카드 빚이 무분별한 납치의 이유가 되는 요즘, 여성들은 어떤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들을 위해 우리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아저씨가 여자들 엉덩이를 치고 다니는 거예요.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일단 다른 칸으로 피했는데 다른 여자들도 불쾌하게 생각하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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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시 각 지방경찰청 산하 112신고센타에서 경찰 인력을 신속히 출동시키고 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 일선 경찰의 성의식 부재 등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지난달 28일 퇴근 시간 무렵, 지하철 4호선에서 직장인 송민영(25)씨가 들려준 일이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송씨는 일명 ‘변태’들과 종종 마주친다. 그때마다 다른 칸으로 피하거나 지하철에서 내렸다 다시 타곤 했다. 달리는 지하철 속에서 딱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지하철에도 경찰이 있다. 주요 환승역을 위주로 범죄 예방과 치안을 맡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지하철수사대가 그 주인공. 사복 차림으로 새벽 7시부터 전철역과 전동차를 누비며 범죄 요주의 인물들을 미행해 범죄 현장에서 검거한다.



“지하철에서 범인이 성기를 드러내 뒤에서 피해자 치마에 사정을 한 일도 있어요. 피해 여성은 그냥 가려고만 했었는데 우리가 치마 좀 보라고 하자 놀라서 그때서야 진술을 했죠.”



지하철수사대의 경찰관은 무엇보다 피해자의 신고를 강조한다. 성추행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친고죄이기 때문. “신고한 사람도 자신이 어느 칸에 타고 있는지 잘 몰라 찾기 힘들고 범인이 중간에 내릴 수 있어 잡기도 힘들죠.”



지하철 241개역을 지키기에는 지하철수사대 20개 출장소와 8개 형사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112 신고센터에서는 지하철 사건 접수시 지하철수사대와 함께 전철역 인근 파출소나 경찰서에 출동 명령을 내려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경찰에 신고하면 늦잖아요. 소리 지르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게 빠를 것 같은데 막상 위험에 처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대학생 문모(21)씨는 집으로 가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공포감을 느꼈다고 했다. 야근이 많은 직장인 최모(24)씨는 밤늦게 택시를 타고 귀가할 때의 위험을 이야기했다. “택시 운전사가 성적인 농담을 하면 무서운 생각에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 거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달 27일 오후 광화문 길거리에서 기자가 인터뷰한 여성 상당수가 놀랍게도 위기 상황에 전화할 수 있는 번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 “119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심지어 50대 중년 여성의 경우, 114를 답하기도 했다.



길거리 치안도 여성에겐 큰 문제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112 신고센터’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이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추행 등 여성 대상 범죄 신고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12로 접수된 여성 대상 범죄만 해도 성폭력이 723건, 가정폭력이 1만6,498건에 달한다.



늦은 밤 집에 가던 중 낯선 남자가 계속 쫓아와 112에 신고한 경험이 있는 김모(27)씨는 “생각보다 빨리 경찰이 출동했다”고 전했다. “위치를 물어서 근처 큰 건물 이름을 말했더니 경찰을 보낸다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4~5분 정도 지나니까 경찰서에서 제 핸드폰으로 전화해 순찰차를 보냈다고 했죠. 전화를 끊고 1분도 안돼 경찰이 왔어요. 쫓아오던 남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불안해하니까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일선의 한 경찰관은 경찰관들이 파출소 업무를 제쳐두고서라도 112 출동 명령을 따른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무전으로 112센터에 사건 결과를 알려야 하고 그 내용이 3개월간 녹음, 1년간 컴퓨터에 기록돼 잘못하면 징계를 당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위험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경찰이 출동한다는 사실에 일단 안도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에서 동 이름이나 지하철 출구 등 구체적인 위치를 대답하기가 어려웠다”고 전했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김씨의 직장 동료는 “실제 성폭행이나 납치 등을 당했다면 경찰이 오는데 걸린 5분은 너무 긴 시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임국빈 112운영계장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현재 핸드폰은 위치 추적이 안 된다”며 “당황한 여성들이 위치를 정확히 몰라 신고가 접수되지 못하거나 출동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핸드폰에 위성위치추적 칩을 내장하면 되지만 사생활침해 논란 등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의정부에 사는 주부 이모(54)씨는 최근 언론 보도에서 무분별한 범죄를 접한 후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겠느냐”며 “핸드백에 호루라기와 작은 손전등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최근 성폭행, 납치 등 범죄에 가시적인 순찰 강화 등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순찰 강화와 경찰 투입이 CCTV 설치 등 적극적인 치안을 펼치고 있는 강남 지역에 또다시 집중돼, 비강남 사람들로부터 “치안에서도 차별받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박영근 공보담당은 “강남 CCTV 설치는 경찰서가 아닌 강남구청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공공장소에 CCTV 설치는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겠지만 돈이 문제다”고 토로했다.



경찰 인력 부족은 사회안전망 유지의 핵심적인 한계다. 현재 우리나라 치안 인력은 직업 경찰 9만1592명, 전·의경 5만609명, 보조인력 5283명(<2002경찰백서> 기준) 등 14만7484명이다.



여경 확대, 민간 경비 활성화 모색



경찰 1인당 담당하는 인구는 527명으로 프랑스 279명, 독일 313명, 영국 472명, 미국 LA 417명에 비해 많은 편이다. 경찰 인력의 증원이 요구되고 있지만 지난 몇 해 동안 경찰 인력을 동결한 상황이어서 인력 부족에 따른 치안 유지의 어려움이 크다. 특히 여성 대상 범죄의 경우 일선 경찰들의 의식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찰들이 가정폭력을 집안 일로 치부하고 성추행을 사소한 범죄로 인식하는 한 몇 분 내 출동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성 대상 범죄 통계의 세분화, 위치 추적 시스템의 보완 등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여성 대상 범죄에 대처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김강자 총경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파출소 등 일선 경찰들이 여성과 아동 범죄에 소홀했던 부분이 있다”며 “일선 경찰들의 교육 강화와 여성의 시각을 가진 전담부서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남대 여성경찰행정학과 이창무 교수는 “경찰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미국 바우처 시스템처럼 국가의 지원으로 민간 경비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민간 경비 인력도 범죄 예방의 한 축이라는 것. 미국의 경우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국가가 민간 경비 비용을 지원해 민간 경비를 활성화하는 바우처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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