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중년, 노년의 뇌에 대한 반가운 사실
[정진경 칼럼] 중년, 노년의 뇌에 대한 반가운 사실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20.02.06 08:36
  • 수정 2020-02-0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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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지러 방에 들어갔는데 그게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외출하다가 국 냄비의 불을 꺼놓았는지 가물가물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길 가다 잘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난감하게도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에휴, 나이 들어 그러려니 해야지.

그런가 하면 나이 든 나는 예전보다 꽤 현명하기도 하다. 고민 있다고 찾아온 젊은이가 갈 때는 밝은 얼굴로 나가기도 한다. 젊어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예전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가 된다. 하루 중 마감 전에 원고 보내고, 전화해서 고장 난 가전제품 고치고, 가족 생일 챙기고, 주말에 손님 치르는데 필요한 재료 장보기 리스트 만들고, TV 보고 소설도 읽고 세끼를 차려 먹는다. 이 정도면 가히 환상의 멀티태스킹 아닌가. 내 뇌는 이제 싱싱하고 재빠르지는 않지만, 전보다 감정에 덜 휘둘리고 종합적 사고가 가능하며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졌다.

최근 뇌과학의 발전은 중년과 노년의 뇌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쏟아내는데, 좋은 소식이 아주 많다. 남성은 50대 후반, 여성은 60대 초반에 뇌의 종합적 수행능력이 절정에 달하는데, 이 절정기는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 절정에 머무는 기간이 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만큼 오래 지속된다. 우리가 건망증 같은 결함만 예민하게 자각하고 중년의 뇌가 지닌 높은 수준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바버라 스트로치의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이런 좋은 소식들을 뛰어난 글솜씨로 펼쳐놓은 책이다. 한 번 잡으면 빠져든다. 이 책을 50대 중반에 읽었을 때 나는 적잖이 기뻤다. 아직도 노력하면 더 좋아질 수 있단 말이지!

신기하게도 뇌는 몸과 나란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 흰머리가 늘고 주름이 파여도 뉴런은 같은 속도로 없어지지 않는다. 기억력이 다소 떨어지고 정보처리속도가 느려져도 뇌는 전반적으로 더 강력해진다. 그동안 비축해 놓은 전두엽의 힘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요점을 이해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서두르지 않고 분별력 있게 행동한다. 신경세포 간의 연결망이 계속 촘촘하게 발달하면서 이른바 중년, 노년의 지혜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발달이 자동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중년기에 노화하는 뇌를 어떻게 자극하는가가 그 이후의 기능을 결정한다. 저자는 건강한 뇌를 유지하기 위한 네 가지 대책을 제시했다. 첫째, 운동을 하면 새로운 뉴런이 생겨난다. 이걸 발견한 학자들은 그날부터 운동화를 신고 연구실을 뛰어나갔다고 한다. 둘째,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외국어 배우기 등 좀 어렵다 싶은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이 한 예다. 셋째는 유쾌하게 살기다. 감정과 인지는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과 어울리고 스트레스를 풀고 사는 것이 뇌에도 좋다. 이런 개인의 노력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으로 정년, 연금, 건강과 요양보호 등 노년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내일 갈 수도 있고 100세 넘어 살 수도 있다. 얼마를 살든 사는 데까지는 똑똑하게 살고 싶지만, 그건 노력한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다. 영민했던 학자, 멋있던 노년의 배우, 유머가 넘치던 친척 아주머니의 치매 발병 소식을 들으면 우울하다. 그래도 오늘 내 뇌가 아직 쓸 만할 때(혹시 나만의 착각?), 며칠 전 찾아본 영어단어를 어느 날인가는 외우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기죽지 않고 또 찾는다. 운동이라면 기를 쓰고 싫어하지만, 운동화를 신고 잠시라도 문밖에 나선다. 아, 어쩌면 인생에는 이리 공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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