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과수’ 유리천장 뚫은 정희선 “‘왜’라는 호기심이 과학의 시작이죠”
[인터뷰] ‘국과수’ 유리천장 뚫은 정희선 “‘왜’라는 호기심이 과학의 시작이죠”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0.01.17 06:30
  • 수정 2020-01-16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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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희선 신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약독물 전문가·숙대 약학 박사
국과수 연구원에서 초대원장까지
가짜 꿀 감별부터 마약 감별까지
정희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여성신문
정희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이 14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회관 신관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홍수형 여성신문 기자

“과학이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과학에서는 ‘왜’라는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과학의 시작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희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65)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정 회장은 여성 최초로 국제법과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법독성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국내에서는 53년 역사상 최초로 첫 여성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초대 원장을 맡았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여성과총) 회장이 되셨습니다.

“여성과총은 2003년만 해도 네 개의 단체로만 구성됐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69개의 단체로 늘어나 그 회원 수가 7만 6천여명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사실 쉽게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같이 힘을 합쳤고 구성원들이 헌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또한 역대 회장들도 많은 어려움 속에서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계는 여성들의 유리천장이 두터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과수 초대 원장을 지내셨습니다.

“‘운이 좋다는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노력이 없었으면 결국 안 됐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국과수에 들어가서 항상 끝까지 남아서 일을 했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 일하니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어요. 그 중 하나가 ‘마약검출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두 번이나 누락됐어요. 그때 ‘이 조직에서는 내가 필요 없나’라는 생각까지 들어 사표를 낼 결심까지 했었죠. 그런데 때마침 제가 만든 마약검출법에 대한 실험문의가 많이 들어왔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승진 때문에 사표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고비를 넘어서니 바로 승진이 됐고 그 이후에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은 것인지 탄탄대로였습니다.”

반대로 국과수에서 일하면서 ‘여성’이라서 유리했던 경험도 있나요.

“우선 이 분야에 여성이 많이 없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 조직 헤드가 여성이구나’하는 시선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발로 뛰었기 때문에 인정받은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불리했던 점이 더 컸어요. 제가 원장으로 지낼 때는 ‘정말 국과수 원장이 맞느냐’하고 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특히 현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한 번은 화재 현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한 기자가 ‘여성이 왜 이곳에 있느냐’며 저에게 ‘유가족이냐’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희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정희선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연합회 회장. ⓒ홍수형 여성신문 기자

과학계에서 종사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주 많아요. 특히 과학 하는 사람들은 사건이 해결되거나 어떤 것을 찾는 것에 어마어마한 흥미를 느낍니다. 이렇게 과학자로서도 재미가 있는데 제가 하는 일이 범인을 잡는 등 국가 치안과 안전에 기여도 합니다. 이 두 가지 큰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거의 처음에 했던 일이 진짜 꿀과 가짜 꿀을 구분하는 것이었어요. 당시에는 구분이 힘들었기 때문에 제가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험 방법을 고민해 개발하니 경찰청 치안본부에서 가짜 꿀을 만드는 사람을 체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고요. 이처럼 모든 사건에는 범인이 있고 피해자가 있습니다. 저는 피해자 편에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는 것에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약독물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마약 투약 여부를 혈액과 소변으로 검사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약대를 졸업했는데 ‘마약도 약이니까 약리작용을 통해 성분을 검출하는 방법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꼭 도입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국제학회에서 발표도 하며 마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고 아시아 사람으로는 최초이고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2011년에 세계법과학회 학회장이 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여성과총에서는 ‘대중 참여’(Public Engagement)에 힘을 쏟고 싶어요. 여성과총은 대부분 학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이 공공적으로 국민들과 연결해서 일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고,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고민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과학수사박물관’을 설립하고 싶어요. 다들 과학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데 어릴 때부터 과학수사를 사회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것에는 우리가 흔히 ‘마약김밥’ 등 홍보성으로 ‘마약OO’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단어가 이토록 쉽게 사용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특히 판단력이 낮은 어린 아이들에게 마약이라는 단어가 친숙하게 다가와서는 더욱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기고문을 작성했는데 앞으로도 관련해서 사회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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