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그 거북이와 나
[정진경 칼럼] 그 거북이와 나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20.01.16 07:00
  • 수정 2020-01-16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햇살이 내리쪼이는 모래밭, 그 거북이와 나는 한가로이 눈을 끔벅이며 마주 보고 있었다. 길이가 1m를 훨씬 넘는 멋진 푸른바다거북이었다. 거북이는 엎드려 일광욕 중이었고 나는 그냥 거북이를 보고 있었다. 조는 듯 끔벅이는 깊은 눈과 마주쳤을 때, 그 순간의 신비로움에 잠시 시공간이 사라졌다. “응, 너구나. 반가워. 우리가 이렇게 만나 마주 보고 있네.” 무한대의 우주에서 먼지만 하다는 지구 위의 한 점 여기 열대의 바닷가, 같은 시간에 살아 얼굴을 마주 본다는 건 어떤 인연일까. 거북이는 내게 약간의 관심 밖에 없는 듯 했지만, 나는 오늘부터 너를 친구로 여기겠다고 했다. 그 몇 분간은 내 인생의 신비체험 중의 하나였다.

해변의 거북이 ⓒpixabay
해변의 거북이 ⓒpixabay

 

그 해변은 거북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지만 인간 출입금지는 아니어서, 거북이와 3m의 거리를 유지하고 만지거나 귀찮게 하지 않으면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스노클을 하고 슬슬 헤엄쳐 다니다 보면 저 앞에 가는 거북이를 볼 수도 있었다. 나는 수영 실력이 딱 맥주병 수준이지만, 어쩌다 한 번 본 물속의 아름다운 광경에 홀려 기회만 있으면 구명조끼를 입고 주저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거북이가 저 앞에 보이면 열심히 헤엄쳐 따라가 보지만 거북이는 그 유연한 수영 솜씨로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숨이 차서 잠시 쉬려고 얕은 물에 나와 서 있는데, 뭔가 딱딱한 것이 내 뒤쪽에서 종아리를 스윽 스치고 지나갔다. 기절초풍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돌아보니 커다란 거북이였다. 짭짤한 바닷물을 한 모금 먹고 일어나서, 태연히 멀어져가는 거북이에게 말했다. “야, 우리 만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난 규칙 지켰는데 넌 뭐냐.” 그러나 그 규칙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거였다. 거북이가 사람을 만지는 건 불법이 아니었구나! 조금 진정하고 보니 그 거북이가 와서 나를 슬쩍 건드려준 게 어찌나 좋은지 실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그칠 수 없었다. 거북이가 와서 만져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 거북이도 친구 삼았다.

푸른바다거북은 몸길이 2m 몸무게 150kg까지 크고 성체는 초식을 하며 대략 100년 이상을 산다고 한다. 우리문화에서는 장수의 상징으로 십장생에 들어간다. 옛 어부들은 거북이를 영물로 여겨 그물에 걸리면 용궁으로 돌아가라고 놓아주었다고 한다.

지구에서 2억년을 살아온 이 멋진 동물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채집이나 도살이 금지되어 있지만 아직도 불법포획을 해서 식용, 약재, 장식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불법포획보다도 더 거북이를 위협하는 것은 환경오염이다. 수많은 거북이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해파리인줄 알고 먹어 장이 막혀 죽는다. 스티로폼을 먹고 잠수를 못해 굶어 죽기도 한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혀 내내 고통받는 거북이 사진도 본 적 있다.

인간의 죄가 너무 크다. 거북이만인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시키더니 이제 스스로도 위기를 맞았다. 우리는 과연 너무 늦기 전에 환경문제를 돌이킬 수 있을까? 거북이들을 보고 온 후, 나는 절대로 빨대를 받지 않고 비닐봉지를 최대한 사양하며 식품을 살 때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스티로폼을 웬수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때 마주 보았던 그 거북이, 내 다리를 스치고 간 그 거북이 친구는 지금도 아름다운 열대의 바다에 잘 살고 있기를. 거북이는 인간보다 장수한다니 내가 간 다음에도 이 친구들은 별 탈 없이 오래오래 살아 지구를 지켜주기를.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인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