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천당에서 떨어지다. 무슨 소리냐고?

한달 전쯤 라디오 21 인터넷 생방송을 하던 중이었다. 한참을 떠드는 중이었는데 진동으로 해놓은 핸드폰이 계속해서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곧 꺼지려니 했는데 계속 울려댄다. 난 생방송 도중에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 이것 보세요. 전화를 안 받으면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중에 다시 하면 되는 거지. 왜 바쁜 연예인한테 자꾸 전화해요? 저 지금 라디오 생방송 중이니까 이따 해요!”

한바탕 쏴붙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와 여자 진행자는 깔깔대고 웃었고 잠시 후 노래가 나가는 사이 내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홍석천이라고 하는데 누구세요?”

“어, 나 ×××라고 하는데…” 유명한 감독님 이름이었다.

“아이고 이 사람아, 농담하지 말고 내가 아는 ×××는 유명한 감독님 밖에 없네요.”

“내가 그 사람일세.”

“……”

난 잠시 할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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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이카루스의 추락>.

그 감독님은 SBS에서도 최고의 감독님 중 하나였고 평소 내가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의 드라마를 하셨던 감독님이었다. 갑작스런 전화에 당황했지만 난 감독님이 내게 중요한 제의를 하시리라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약속 자리에 나가보니 감독님께선 올 가을에 들어갈 미니시리즈에 역을 주시겠다 하셨다. 그것도 주인공 친구 역으로 주인공은 차인표와 김남주.

이런, 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 동안 3년이란 시간, 고생하며 참아온 보람이 있구나. 드디어 난 어느새 천당에 온 마냥 행복한 웃음을 흘려댔다. 최고의 작가, 최고의 감독,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 얼마나 기대되는 일인가? 아참, 작가는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김수현 선생님이다. 89년쯤인가 인기를 끌었던 ‘모래성’이란 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란다. 난 차인표 선배의 친구 역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축하의 박수를 보내줬다. 특히 부모님은 거의 우시다시피 하셨다.

커밍아웃 후 너무나 마음 고생이 심하셨던 어머니, 아버지는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촬영이 시작될 8월이 기다려질 뿐이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겪은 고충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새벽 4시까지 서울, 인천지역을 돌며 나이트클럽에서 DJ 하는 일은 오히려 신바람을 부채질하는 일이었다. 택시를 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요즘 왜 TV 안나오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을부터 인사드릴게요”라고 말하면서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 이틀 전 늦은 아침 날 깨운 전화 한 통.

“이야기의 소재가 이번에 새로 시작한 일일드라마와 너무 비슷해서 기획 자체를 취소했다. 미안하다. 다른 기회를 기다려보자.”

감독님께서 드라마 기획 자체를 취소하시고 새로운 드라마를 찾고 계시단다. 아, 난 날개 달고 천당에서 노닐다가 두 쪽 날개가 꺾여 다시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눈물로 스스로를 달랜다. 그리곤 지쳐 잠든다.

카메라가 돌아간다. 조명에 눈이 부시나 난 또 하나의 나로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친다.

“컷! 오케이!”

그렇게 꿈 속에서라도 연기하는 내 모습을 보려한다. 정말이지 온 몸이 근질근질하다. 연기자인 내가 왜 연기를 못하고 있는 건지, 좀처럼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이제 또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많이 힘 빠져 있는 상태지만 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나를 천당으로 또 이끌어줄 한 통의 전화가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난 한 달은 참 오랜만에 행복했었다. 아주 오랜만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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