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choks@ewha.ac.kr

정치학자 조기숙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주류의 비주류가 된 듯한 상실감, 비주류의 어색한 주류방식에서 온다고 진단한다. 조기숙 교수는 제안한다. 과거의 주류는 권력을 빼앗겼다 해도 여전히 권력자이고 기득권자이니 공연스레 자기연민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며, 과거의 비주류는 권력을 잡았으니 비주류식 권력다툼을 중지하고 주류식 경쟁을 보여주라고.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우리사회의 추하고 부패한 권력의 모습을 초등학교 반장 엄석대와 그 주위의 기회주의적인 아이들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의 압권은 30년이 흐른 뒤 주인공이 기차 안에서 경찰에게 체포된 범죄자 엄석대를 우연히 목격하는 장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합리한 권력을 휘두르던 엄석대가 분명히 대성공을 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독자들은 그가 실패한 범죄자로 몰락하자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 맞아! 사이비는 끝내 몰락하게 돼 있다니까.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야. 이 정도 행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정말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야. 감히 엄석대 같은 녀석이 어떻게 나와 같은 반열에 낄 수가 있겠어.”

“이 소설 순 엉터리잖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뒤죽박죽인데 엄석대가 체포돼 법의 응징을 받는다고? 그런 인간은 자신만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자손손 영화를 누릴 거야.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나 같이 고지식한 사람은 맨날 이모냥 이 꼴이지.”

당신은 어느 쪽인가. 전자가 주류의 생각이라면 후자는 비주류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권 출범 이후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바로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말이다. 주류는 권력을 가진 파벌이며 비주류는 권력에서 소외된 반대파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된 데에는 주류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한 몫 했다. 특히 2030으로 대표되는 젊은 유권자는 기존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노무현’이라는 비주류의 상징을 선택했다. 노대통령은 현역국회의원이 아니었으니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당내 기반도 없었다.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인 조선일보에 정면으로 대들기도 했고 모든 정치인이 편승하기에 바빴던 지역주의에 분연히 맞서 싸우기도 했다.

국민들의 주류 정치인에 대한 분노는 외환위기 이후 극에 달했다. 이회창 후보는 사람에게 특히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주류로 상징되는 모든 요건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 대선은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승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류가 현실지향적이라면 비주류는 현실타파적이다. 주류가 긍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 데 비해 비주류는 냉소적 표현을 많이 한다. 주류가 남들의 실패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비해 비주류는 실패한 사람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줄 안다. 주류가 보수적이라면 비주류는 진보적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맹렬히 고발한 작가가 가장 보수적인 논객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소설의 권선징악적인 결말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진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전 국민이 비주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전통적인 주류는 비주류에게 두 번이나 권력을 빼앗기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습이 완전히 비주류가 다 된 것 같다. 당선자 시절부터 봐주는 것도 없이 공격을 해대는 보수 언론의 모습이 꼭 그렇다. 사실 다 이긴 선거라고 생각했는데 선거 직전에 판세가 역전되니 결과에 승복하기도 어렵고 대통령 대접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비주류는 권력을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 대통령의 현실주의적 노선 선회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래 비주류는 속고만 살아서 불신이 더 많은 법이다. 노대통령도 방미를 앞두고 논설위원과 오찬에서 그간 비주류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자조적 냉소적 표현을 자주 쓰는 버릇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비주류는 “대통령은 개혁의 시간표와 전략을 가지고 있을 거야. 우리가 믿고 기다려줘야지”하는 인내의 자세가 없다. 그래서 과거 대통령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위하고 투쟁한다. 자신들이 뽑은 비주류 대통령에게 시간과 힘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망각한 듯하다.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받으니 대통령과 측근들도 매사에 반응적이 되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 동안 우리 사회 주류들이 개인의 잇속에만 급급하여 공동체를 위한 도덕심을 등한시한 것이 사실이다. 주류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경종이 바로 지난 선거에 유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정치혁명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전 국민이 비주류가 되면 누가 권력을 행사하고 누가 그 권력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인가. 전 국민이 실력행사를 하면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전교조와 교총의 대립, 교사와 교장의 갈등이 진정으로 학생의 인권과 교육권을 위한 것인가. 과거에 정말로 소외된 계층을 위해 관용되었던 집단행동이 전통적 기득권층이나 현직 장관에 의해서도 애용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비주류가 권력을 잡았다고 기득권층이 하루아침에 비주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은 여전히 금권과 언론권력 사법권력 등을 쥐고 있다. 이런 권력층이 자기 연민에 빠져 비주류 행세를 하려 들면 국민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대통령과 측근도 마찬가지다. 이제 권력을 잡았으면 비주류적 언행은 그만 두어야 한다. 신주류는 구주류보다 높은 도덕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능력에 있어서도 구주류에 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제 집단행동을 통한 비주류식 권력다툼을 중지하고 업적과 실력으로 하는 주류식 경쟁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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