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규칙들을 꺾고 비틀고

~19-1.jpg

“축구를 하진 않았지만 늘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다른 식으로 살았어요. 정해진 길을 거부했죠. 영화 속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늘 음식을 잘하는 완벽한 인도여성이 되길 원했지만 난 거부했어요. 인도 옷도 입지 않았구요, 요리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손님 치르는 날 남자들은 식탁에 앉고 여자들은 음식 나르느라 바쁠 때 전 늘 식탁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죠. 사람들은 여자가 그러면 안 된다고들 했지만 제일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곤 했어요.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자기의견을 확실히 밝혔어요. 엄마한테도 밥하는 것은 억압적이고 남녀차별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죠. 그러면 엄마는 나중에 네 시어머니한테 가서 그렇게 이야기해봐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인도 출신 영국 여성감독 구린더 차다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이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모은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 (원제 Bend It Like Beckam)을 쓰고 연출한 구린더 차다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영국 웨스트런던에서 성장한 인도이민 2세대 영국인. 영국 BBC 방송의 기자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영국영화연구소와 채널4의 지원으로 93년 <바닷가에서의 피크닉>(원제 Barji on the Beach)으로 데뷔했다. 데뷔 이후 줄곧 영국 내 이민가족의 삶, 특히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부모세대와 그 가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2세대간의 갈등을 따스한 유머로 감싸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두 번째 영화인 <무슨 요리하지?> (원제 What’s Cooking?)는 미국 내 서로 다른 민족의 네 가정 (흑인, 라틴계, 유태인과 베트남)이 각기 추수감사절에 전통적인 식탁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 속에 세대간의 차이를 녹여낸 영화다.

여자는 시집을 잘 가는 것이 최고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시크교도 부모를 둔 인도출신 영국소녀 제시가 영국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영웅 삼아 여자축구 대표선수가 되는 꿈을 키우는 이야기인 <슈팅 라이크 베컴>은 영국에서 크게 히트한 데 이어 미국에서도 개봉, 현재 10주째 톱10에 들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도 그렇고 세계영화시장에서 예상외로 히트를 한 작품 중에는 부모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 이민 2세대 여성들의 작품이 꽤 많다. 작년 미국에서 가장 놀라운 히트를 기록한 <나의 그리스식 웨딩> (원제 My Big Fat Greek Wedding)도 미국 이민 2세대인 여성이 쓴 연극을 영화화하고 그 여성이 직접 출연한 영화. 또한 구린더 차다와 함께 2세대 인도출신 여성감독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라 네어의 <몬순 웨딩> (원제 Monsoon Wedding)도 비록 인도 내 가족의 이야기지만 미국화의 영향 등을 다루는 등 전통적인 가치관과의 갈등을 다룬 점에선 일맥상통한다.

@19-2.jpg

부모세대 가치와 다른 인도 이민 2세대 갈등 유머로 표현

주류영화서 볼 수 없는 내 몸 인정하는 여성캐릭터 인상적

그러고 보면 모두 결혼과 연관되어 있는데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제시의 언니는 결혼에 최우선가치를 둔 젊은 여성으로, 영화 속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이는 아무래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문화는 여성에게 결혼생활을 강조하게 되고, 또 이민1세대 부모들의 경우, 같은 민족의 사위를 얻고 싶어한다든지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딸을 키우려 하는 데서 오는 부모-자식간 갈등이 실제로 많기 때문. 구린더 차다 역시 자신이 아버지와 겪었던 갈등과 화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만 차다는 일방적으로 전통을 거스르는 자식이 아니라 1세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쏟는 정성, 그리고 그들의 희망 등에 대한 이해를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결국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행복을 위하는 쪽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따스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립영화감독이지만 멀티플렉스에서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상업적인 영화도 만들고 싶어하는 차다는 <슈팅 라이크 베컴>으로 그 꿈을 이루게 됐다. <풀 몬티> 이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국영화가 된 것. 차다는 베컴을 제목에 택한 것은 그가 가정적인 모범가장이자 축구의 영웅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가 골을 넣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을 찰 때 직선으로 달려가 차지 않고 커브를 그리며 살짝 꺾는다는 것이다. 마치 바나나 모양처럼 휘게 함으로써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한 인터뷰에서 차다는 바로 이런 점이 자신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은유해준다고 말했다. “여자들은 자신의 목표를 바라보지만 직선적으로 그를 향해 뛸 수가 없다. 정해진 규칙들을 꺾고 비틀고 해야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 영국 웨스트런던의 지역적인 특성을 바탕에 깐 이번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국이 열광하는 축구에 인도 여자아이를 설정하면 흥미로울 것이라는 생각과 99년 본 월드컵 여자축구대회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함께 경기장을 가득 메운 여성 축구팬들의 행복에 찬 표정들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차다가 시도한 것은 주류 영화들에 나오는 마르고 늘씬한 몸매의 여성이 아니라 근육이 있고, 스포티하면서 힘센 여자아이들, 자신의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 건강한 모습의 여성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영화 평론가·USC 영화과 박사과정

*참고:<슈팅 라이크 베컴>은 월드컵열풍을 타고 국내에서는 작년에 개봉했고

미국에서 최근 개봉, 5월 3주 동안 박스오피스에 올랐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