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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김지양의 사진엔 뭔가가 있다. 원초적으로 본능을 자극하거나, 확 튀는 류와는 다른… 특이하고 뭔가 느낌이 있는 영화 포스터였던 <미인>, <소름>, <생활의 발견> 등이 그녀의 작품이다. 최근엔 FRJ, GIA 등의 패션 브랜드 사진을 찍었다. 차분하고 다소 정적으로 보이는 그녀지만, 일을 할 때는 적극적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알았으면 좋겠구요.”‘노가다’판으로 불리는 포토그래퍼의 세계, 그 속에 김지양의 세상이 있다.

포토그래퍼 김지양은 얼마전 본 피나 바우쉬의 공연 <마주르카 포고>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했다. 문득 그럴 것 같았다.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건 흔치 않은 감성이다. 실제 그녀 사진도 그렇다. 그녀와 얼마만큼 비슷하고 그녀와 얼마만큼 다르다.

“저는 제가 순수 사진작업을 하면서 간간이 일하며 살 줄 알았어요. 지금처럼 일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돈 벌고 이런 게 엄두가 안 났거든요.”

그녀가 특유의 말갛고 촉촉한 미소가 엉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프로다. 더 보탠다면 프로 중의 프로? 특이하고 뭔가 느낌이 있는 영화 포스터였던 <미인>, <소름>, <생활의 발견>이 다 그녀 작품이다. 최근엔 FRJ, GIA 등의 패션 브랜드 사진을 찍었다. 그녀 사진에는 뭔가가 있다. 원초적으로 본능을 자극하거나, 확 튀는 류와는 다른.

예전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영화? 그럼 영화 감독? 아니면 촬영? 그게 뭔지는 몰랐다. 그냥 막연히 영화를 하고 싶었고, 사진을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히 볼 바가 아니었어요.”

그리하여 얼떨결에 시작한 사진에 빠져든 그녀는 졸업을 하기 전, 그 유명한 포토그래퍼 김중만의 어시스트로 들어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러다 당시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인 서울 매거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과 스타일로 ‘스트리트 매거진’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던 잡지였다

“제가 찾아갔어요. 사진을 찍고 싶다고.”

차분하고 다소 정적으로 보이는 그녀지만, 할 때는 적극적이었다. 지금 <미인>으로 뜬 이지현을 데리고 고양이 사진을 찍은 것도 그때였다. 무명의 이지현은 그 사진을 찍은 후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았다. 그녀에게도 그 뒤 일이 쏟아져들어왔다. 찍어낸 듯한 사진이 아니라 이국적이면서도 그녀만의 특이한 감성을 사람들이 알아본 거였다. 여러 패션잡지에서 패션 화보를 찍었다. 또 한 편으론 광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다가 문득 영화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또 그녀는 무턱대고 찾아갔다.

“영화 포스터와 스틸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데요.” 포스터는 알겠지만, 스틸 사진을? 그 힘든 일을? 거기다 보수도 짜서 이름 좀 있는 이들은 꺼려하는 일이었다. “모르고 한 거죠”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영화사측에서 반색하고 달려들었을 거 같은데, 아니었다. 그래도 패션계에선 꽤 알아주는 그녀였는데, 그들은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영화 사진은 전혀 다른 분야라는 거였다.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은 그녀를 믿기 힘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건 곧 기우임이 드러났다.

영화 촬영현장에 거의 매달려야 하고, 거의 ‘노가다’에 비유되는 스틸 사진도 그녀는 자기 스타일로 만들었다. 그녀 스타일로 찍고 그 동안 패션지 화보 하던 일일이 프린트했다. 일일이 현상, 인화를 체크하고 색보정을 하고 큰 사이즈로 프린트했다. 보통 영화 스틸 사진계에선 없던 일이었다. 나온 사진은, 흔히 보던 스틸 사진과 달랐다. 그제야 영화쪽 사람들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 결과물이 그전까지 영화 스틸 사진을 보여준 <미인>이었다. 2천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이후로 영화일이 하나, 둘 들어왔다. <소름>, <생활의 발견> 포스터였다.

“영화 일을 하면서 성격이 달라졌어요. 개방적으로 변했어요. 그 전에는 사람 만나기 어려워하고, 좀 내성적이었거든요. 요즘은 주로 인물 사진을 찍는데, 인물사진이라고 해서 인물만 보는 건 아니에요. 패션 코드를 열어놓고 공부해요. 그 안에서 인물 사진을 디테일 하게 찍는 거죠. 유명인을 찍어도 그냥 모델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웃어도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웃어야 해요. 그 사진을 볼 누군가를 생각하고 웃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그 사람의 자기 다음이 나와줘야 해요. 예전엔 그게 힘들었어요. 누구 찍는다 해서 가서는, 그 사람을 잘 모르는데, 짧은 시간 안에 어쨌든 찍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최근엔 정리했어요. 그게 바로 주어진 상황인 거죠. 남들이 내게 찍어주길 원하는 일, 그게 지금 일이에요. 이 일이 그런 일인 거예요. 그래서 다 감수해야 하죠. 전에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걸 인정하기로 했어요. 내 일이 원래 그런 거니까. 저는, 건전한 쪽 사진이 좋아요. 거기서 포지티브 기운이 느껴지니까 좋아요. 꼬이고 우울한 게 아니라. 동성애 코드 같은 류는 저하고 안 맞아요. ”

그녀는 요즘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고 있다. 시간이 남으면 책을 본다. 책도 너무 문학에 꽂혀있다 싶으면 과학책을 보고, 또 공연을 본다.

“밸런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나를 관리하고 싶으니까.”

인터뷰하던 날 저녁에도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보러가기로 했다. 들뜬 목소리였다.

“남자친구는 지혜롭게 사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저한테 이기려들지 않구요. 저는 누가 나한테 이기려 드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사진 찍는 후배에게 해주고픈 말을 해달라자, 그녀가 조용조용 말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알았으면 좋겠구요. 또 테크닉을 갖추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단 기술적인 게 완벽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여자 포토그래퍼들. 여자들은 흔히 감각이나 감성 위주로 사진을 찍고 거기 치중하기 쉬운데요. 베이직한 테크닉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착실히 실력을 쌓아야 해요. 새로운 장비에 귀를 열어놓고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하구요. 프로로 일 하려면요. 어쨌든 돈을 받고 일하는 클라이언트 컨셉이 먼저죠. 그러기 위해서도 기술적인 것부터 잘 알아야 해요.”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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