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확산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보건당국이 아니라 돈을 다루는 한국은행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주 금리를 인하하며 배포한 자료에서 한국은행은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사스를 꼽았다. ‘사스(SARS)’란 단어는 이 자료에 ‘북핵’보다 무려 일곱 번이나 많이 언급됐다.

환자가 눈에 띄게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증가추세가 주춤한 듯한데 어떻게 경제에 피해가 간다는 것일까. 먼저 항공산업은 여행객 감소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어 중국 서안이나 곤명 같은 노선운항이 중단됐다. 관광산업인 서울 특급호텔 예약률은 50% 수준으로 떨어졌고 사스 중심지인 싱가폴이나 홍콩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 이상 줄었다.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메이저리그 야구경기도 사스 때문에 선수나 관중동원에 지장을 받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사재기로 인해 슈퍼마켓 판매대의 쌀·식용유·세제 같은 생필품이 동나는 현상이 발생, 급기야는 중국정부가 수급조절에 나서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여성들 화장품 판매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났다. 홍콩에서는 사람들이 집 밖에 나오려고 하지 않고 또 나와도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립스틱과 같은 제품은 매출이 30%나 떨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로레알 같은 화장품 회사는 마스크를 써도 얼룩이 묻지 않는 립스틱이나 마스크 밖으로도 보이는 눈을 강조하는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사스 때문에 우리가 반사이익을 보는 것도 있다. 제주도는 때아닌 관광 특수를 맞고 있으며 김치가 면역효과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중국 등지에서 매출이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사스로 인해 상담이나 수출이 취소돼 입는 경제적 피해는 이보다 훨씬 커, 대한상의에서 조사한 업체의 30%가 사스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제대로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고 문을 닫는 곳도 생겼다. 선진국 바이어들이 방문이나 상담을 기피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와 직접 관련 없는 사업까지 영향을 받고 있고, 남북한간의 금강산 관광사업도 중단됐다.

의학전문가들 중에는 사스의 사망률이 3-4% 정도로 폐렴보다 낮고, 전염성이 유행성 독감에 비해 덜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 출장 갔다가 돌아온 사원을 열흘 동안 집에서 쉬게 한 후 출근케 한 회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청화대학교에 객원 교수로 있는 친구가 서울에 왔을 때 손을 내밀며 하던 말 “나 도착한 지 보름 넘었어”.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잠복기가 지났으니 걱정 말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20 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큰 문제가 됐던 것은 1차대전이 끝날 무렵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이다.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무서운 질병으로 1, 2차 세계대전 전사자보다 인명 피해가 많았다. 그러나 당시에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어 질병의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수만 명이 숨진 홍콩 독감이 유행할 때는 경기 침체기여서 그 충격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지금은 걱정스럽게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이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 빠져 있는 상태다.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 경제 속에서 거의 유일한 활력소 역할을 했는데 사스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 인류의 건강과 번영을 위해서 사스(SARS)가 조속히 퇴치되기를 기원한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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